조명하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본 대만 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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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하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본 대만 한인들
  • 편집국
  • 승인 2016.09.2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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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5월 일왕 장인 구니노미아를 척살한 타이중에서 추모행사

주 타이베이 한국대표부(대표 조백상)는 9월 18일, 주최한 ‘2016 조명하 의사 추모 간담회’를 타이중(臺中) 한글학교(교장 조남경)에서 개최했다.  

▲ 조명하 의사(1905-1928)
타이중 한글학교는 조명하 의사가 1928년 5월 14일 오전 당시 일본 육군대장이며 천황의 장인이었던 구니노미아를 척살한 장소와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이날 행사는 타이중 시 정부 문화국이 9월 17일·18일 양일에 걸쳐 개최하는 타이중 시내 고적답사(대만인 대상)에 18일 합작금고은행(조명하 의사 거사 장소)가 들어간 것을 기념하기도 했다. 이날 강연회에는 50여 명의 한인들이 참석했다. 타이중은 물론 타이베이와 까오슝(高雄), 신쥬(新竹)에 있는 한국학교와 한글학교 선생과 가족 그리고 각지의 유학생들도 참석했다. 

한국대표부는 고적답사 행사가 끝난 후 저녁 6시부터 타이중 한글학교에서 대만 슈핑(修平)과기대 김상호 교수(중문학)의 조명하 의사 관련 강연과 질의응답을 진행했고, 대표부 이상열 부대표는 조명하 의사와 관련해 대표부가 타이베이(臺北)와 타이중 시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표지석 설치 건과 관련 사안에 대한 경과보고와 대표부에서 마련한 조 의사 관련 퀴즈를 진행했다.

▲ 강연중인 김상호 교수와 이상열 부대표(오른쪽)

강연에서 김상호 교수는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인해 조선왕조는 외국으로 나가기는커녕 내부적으로 당파 싸움만 있었다. 1905년 이완용은 가렴주구로 모은 재산을 지키려고 나라를 팔아먹었다. 1948년 이중인격자이며 기회주의자인 이승만,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자기지지 세력이 없자 친일파와 손잡았다. 2차대전 후 우리도 프랑스처럼 친독일파를 모두 청산해야 했는데 이승만은 오히려 친일파와 손잡으며 그들을 청산할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지금까지 나라는 친일파의 잔재가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순국하신 조명하는 누구인가’로 시작해 일대기에 따라 설명했다. 그는 “2004년 출판된 대만 역사 사전 1184-1185쪽에는 조명하와 관련한 기술이 잘못돼있다”며 “그동안 대표부의 고위직의 누구도 거사 장소가 어딘지 물어보거나 한번 가보자고 한 사람이 없었다. 마침 이 자리에 계신 이상열 부대표가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 2015년 12월19일 거사장소에 함께 갔었다. 물론 오늘 행사도 이상열 부대표가 기획한 것”이라고 말했다. 

▲ 강연을 듣기 위해 대만 각지에서 참석한 한인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을 통해 까오슝 한국학교 선생은 “조명하 의사처럼 위대하신 인물이 대만에 계셨다는 것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알려야겠다”며 자신도 조명하 의사에 대해 더 공부하겠다고 했다. 대표부가 준비한 조명하 의사와 관련한 간단한 퀴즈를 통해 도서상품권을 나눠주는 시간은, 이 자리에 참석한 한인들이 조명하 의사를 처음으로 바로 알고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2018년이 조명하 의사 거사 90주년이 되는 해로, 그전에 조명하 의사를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열어 대만역사사전에 잘못 기술된 내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깊은 사고(思考) 없이 무작정 친일성향이 강한 대만 역사학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만 내 한인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조명하 의사 관련 행사를 열어 한인들의 깊은 관심과 아울러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도 급선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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