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 풍류 정신문화의 신명…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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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풍류 정신문화의 신명…②
  • 나채근 영문학박사
  • 승인 2016.09.2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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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근 영문학박사(영남대학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과')

우리는 집에 가는 발걸음이 경쾌했던 개인적인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상장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나 청장년 시절 월급봉투를 가지고 갈 때나 아이들 먹을 것을 사가지고 돌아갈 때 발걸음은 흥겹게 절로 떨어진다. 

이웃마을 잔치 집에 가서 온 종일 일하고 떡과 과일을 얻어 자식들에게 먹이려고 귀갓길을 재촉했던 부모의 심정도 행복과 기다림에 젖었을 것이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돌아가는 길이 아무리 멀어도, 산봉우리를 여러 개 넘는다고 해도 기다리는 자식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행복한 느낌은 샘물처럼 멈추지 않았으리라. 이러한 한국적인 상황에서 발생되는 흥겨운 정서는 오래도록 전승되어 온 우리네 신명을 형성해왔다.

사회적으로도 한국인들은 한국 축구가 16강을 거쳐 4강에 오르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냈던 2002 월드컵, 극적인 9회 말 역전승을 이끌었던 한일야구, 북경, 런던,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을 획득했던 장면에서 모두가 하나 되어 감격과 흥분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면 이러한 신명나는 경우는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가? 남을 즐겁게 하려는 행위 저변에 혹은 우리 모두가 행복과 감격을 느끼는 저변에 서로의 가슴을 뛰게 하고 역동적인 삶으로 만들어 가는 동인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한국인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신명일 것이다.

2002년 당시 한국인들의 응원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4강에 올랐던 사건보다 세계인을 놀라게 한 것은 수백만 사람들이 집에서 식당에서 거리에서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붉은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 생기에 찬 역동적인 모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그 열정, 감동, 기쁨으로 하나 되는 에너지는 신명의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신명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계산으로 답할 수 없는 성질을 지닌다. 이러한 신명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고대 부족 국가 시대에 행했던 종교적 의미를 지닌 제천의식까지 오를 수 있다. 당시의 제천의식은 단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종교의식으로서의 기능 그 이상을 지니는데, 음주가무로 천신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신과 하나 됨으로써 의도했던 기원은 현재 살아있는 인간들의 즐겁고 복된 삶을 위한 것이었다. 

제천의식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동안 잠재되어 억눌려 있던 사고와 감정이 분출되고 해소되어 일상의 질서에서 해방을 느끼고 카타르시스의 느낌과 새로운 활력을 얻었던 것이다. 즉 신바람에 휩싸인 것이다. 신바람이란 신명에 해당되는 우리말이다. 

신바람이란 ‘신’과 ‘바람’의 합성어이다. 한국문화에서 신은 ‘귀신 신(神)’의 의미만이 아니라 일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 문화는 서양처럼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로 이분화 되지 않고, 동학의 인내천 사상에서 볼 수 있듯이 성속의 구별이 없는 신과 인간이 일체가 되어 있는 문화이다. 

한국문화에서 바람 역시 기상학적인 바람이기보다는 물리적 의미의 에너지 즉, 기운(氣)의 흐름을 의미한다. 결국 합성어인 신바람이란 신과 인간이 하나 되는 기의 흐름이고 흥의 확산인 것이다. 이러한 신바람은 인간 심리와 정서의 내면에 잠재해 있다가 어떤 외부적인 자극이 오면 상황의 변이와 인과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닌 느낌이나 인식의 요소들은 외부의 사건들과 접속하면서 또 다른 벡터적 방향성으로 매번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나 한일 야구 경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사건들과 접속을 통해서 새롭고 창조적인 한국적 신명은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과 신명의 의미는 그 강도상의 차이를 형성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한국만의 신명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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