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매너] “고개를 들라 !”
상태바
[글로벌 매너] “고개를 들라 !”
  • 신성대 동문선 대표
  • 승인 2016.09.12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고개를 들라!”

사극에서 빠지지 않는 말입니다. 그렇게 이 땅의 옛 민초들은 존엄하신 분은 물론 양반(주인)집 도련님에게조차 감히 고개 들고 쳐다볼 수 없었지요. 아무렴 지금 세상이라고 그 관습이 다 없어졌을까요? 조선 시대 어전회의와 지금의 청와대 국무회의나 비서관회의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허리 굽은 반도에서는 허리 굽은 사람만 난답니까?

얼마 전 전주의 어느 학교 교실에서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고 학생의 뺨을 때린 교사가 고소를 당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게 그나마 한국이어서 다행이지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그 교사 어찌되었을까요?

글로벌 매너란 글로벌 마인드로 세상을 보는 시야와 상대방에 대한 인식, 그리고 당당히 대우 받기 포함 전인적 소통능력, 협상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한데 눈도 제대로 못 뜨고서야 소통은 고사하고 온전한 인격체로서 인정받기조차 힘들게 생겼습니다. 악수를 할 때, 건배를 할 때, 그리고 대화를 할 때 한국인들은 상대와 눈맞춤을 못합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에서 보자면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봉건국가지요. 


눈맞춤이 곧 소통이다!

아기가 태어나 눈을 뜨면 엄마와 ‘눈맞춤’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소통 본능이지요. 그런데 유독 한국아이들만 차츰 자라면서 어른의 눈길을 피하게 됩니다. 눈 깔기!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 배운 ‘배꼽인사’ 때문입니다. 봉건적 관습이 강요된 때문으로 인간 존엄성 면에서 보자면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지요. 

하여 한국의 어린이들은 그 의미도 모르고 어른(선생)들이 시키는 대로 어른만 보면 무작정 허리와 고개를 숙여 절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더니 어른들로부터 귀염 받는다는 걸 터득하게 됩니다. 강아지처럼 길들여지는 거지요. 그러면서 점점 어른들과의 눈맞춤을 피하는 버릇이 몸에 배게 됩니다. 예절을 가르친다면서 아이를 하인으로 만든 것이지요. 독립적 인격체로 자라나게 해줄 자기존중의 뿌리가 일찌감치 통째로 뽑혀 나가버렸습니다. 주인(주체, 주동)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아이가 자폐인지 아닌지는 먼저 눈맞춤을 피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 ‘자폐아’가 많은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중에 교육을 통해 눈맞춤 소통매너를 배운다한들 생각과 행동이 그렇게 따라주질 않지요. 해외로 유학이나 이민을 가서도 좀처럼 현지인들과 눈맞춤을 못하지요. 지은 죄도 없는데 절로 주눅이 듭니다.

“감히 어린놈이 어른한테 눈을 똑바로 떠?” 이렇게 한국의 아이들은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 부모와 약자, 스승과 제자, 어른과 아이, 선배와 후배, 상관과 부하, 주인과 하인, 흔한 말로 갑(甲)과 을(乙)로 이루어져 있는 줄로 인식하게 되지요. 인격은 동등하다는 인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인 대부분이 소통매너가 안 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답니다. 해서 수평적 사고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5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 방문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기 전 함께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시종일관 상대를 주목하고 있는 모디 총리와는 대조적으로 박 대통령은 상대를 보지 않고 엉뚱한 곳에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사진 청와대)


공손은 곧 하인모드

유교에서의 공손은 기본적으로 천신(天神)과 조상신(祖上神)을 받드는 데 있었습니다. 그 제례의 법도를 민간에 퍼뜨려 사회 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이가 바로 공자(孔子)였지요. 한데 하늘은 제 맘껏 우러러 볼 수 있지만 인간 사회의 계급 앞에서는 함부로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게 봉건사회입니다.

공손은 곧 복종! 많은 동물들이 그러하듯 그 표시로 눈을 내리 뜨고 고개를 상대보다 숙여 자세를 낮추는 것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소통법이 못 됩니다. 한데도 이 땅에선 아직도 눈을 못 뜨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통령이나 회장님 앞에서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권력 앞에서는 내시가 되고 금력 앞에서는 노비가 되길 서슴지 않는 것은 일찍부터 잘못 배운 이 하인매너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봉건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높이는 ‘공손’을 유교적 예법이 가진 최고의 덕목인 양 자랑해 왔습니다. 어른이나 높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굽히고 존대해야 한다고 배웠지요. 하여 예절이란 곧 공손(겸손)이라 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공손은 위선일 수 있고 가장할 수도 있습니다. 공자의 시대가 그랬듯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꾀)이기도 하지요. 개인이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봉건시대에는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만이 안명(安命)을 보장해주었으니까요. 허나 지금 같은 세상에선 지나친 공손은 오히려 가식으로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서양에선 봉건시대가 끝나면서 의례 등에 극히 일부분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일상에선 그런 굽신 예절이 소멸되었습니다. 

서구문명의 큰 축 중의 하나인 헬레니즘에서 ‘겸손(humility)’은 ‘비굴(humiliation)’과 동의어였다고 합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으뜸이 되는 일에 매우 열정적이어서 자기표현을 중요시했으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뛰어나기를 열망했었답니다. 그들에게서 ‘겸손’은 삶의 낙오자들에게서나 발견되는 혐오스런 특징이었을 뿐이었지요. 그 시민정신이 중세에는 기사도, 오늘날에는 젠틀맨십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꾸밈에서 진정성으로 가는 자기점검과 실천

물론 매너(에티켓, 예절) 교육이란 것도 원칙적으로는 가식과 위선에서 시작합니다. 교양 있는 척, 지혜로운 척, 착한 척, 의로운 척, 경건한 척…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거지를 다듬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 위선은 실천을 통해 언젠가는 진정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삶의 중간 중간에 자기점검(Self-monitering)이 있어야지요.

서구의 지성인들이 해골을 책상에 두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외우며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하고 성찰해 왔던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헌데 많은 한국인들이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해버리지요. 하여 출세를 하게 되면 원래부터 자신이 그만한 자질을 가진, 잘난 위인인 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찰 없이 살다보니 주제파악을 못하고 어느 순간 실수로 삶을 통째로 망치고 마는 겁니다. 당연히 소명의식도 없어 웬만큼 이루고 나면 거기서 멈춰버립니다.

▲ 백악관 국빈환영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옳지 못한 건배 자세. 고개를 똑바로 들고 상대와 눈맞춤 상태에서 건배해야 정격.


공손의 반대말은 당당함이다

공손의 반대말은 건방짐이 아니라 당당함입니다. 그러니 우리 세대부터 예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가 ‘공손’이라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합니다. 혹자는 공손하면서도 얼마든지 당당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공손하면서 비굴하기는 쉬워도 당당하긴 지극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 당당함조차 갑질로 변질되기 일쑤랍니다. 작금의 한국사회가 온통 갑질로 범벅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봉건시대를 박살내고 계몽의 시대를 연 적이 없습니다. 하여 개인주의, 자기존중, 주인의식, 인격존중, 인간존엄, 생명존중에 대해 처절하게 성찰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서구적 선진 개념이려니 하고 도덕 필기시험 보듯 건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인격형성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전통예절에 관해 우리는 아예 인식조차 해보질 않았습니다. 유학(유교)의 영역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겨 누천년을 오르지 공자님 높이기 경쟁만 해왔습니다.

당당함을 옷 입고, 겸손의 향수를 뿌려라

사람이 사람을 바로 쳐다보면 안 되다니? 아무렴 한국인들의 눈맞춤 기피는 글로벌 비즈니스 소통매너 학습에 최대의 장애 요소임은 여러분들이 직접 겪어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서 우물 밖에 나가면 모조리 하인이지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이것 하나만 고쳐도 “한국인이 달라졌어요!”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시류가 바뀌면 그때 따라가면 되지 뭐!’라는 나태함은 하인의 마인드입니다. 현대는 매너가 자원이고 경쟁력입니다.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당당함을 옷 입고, 그런 후에 겸손의 향수를 살짝 뿌리세요." 적극적으로 고치고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인의식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