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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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⑤
  • 나채근 영문학박사
  • 승인 2016.08.0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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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벽화'에 내재된 예술적 승화와 내적 성숙의 가치
▲ 나채근 영문학박사(영남대학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과')

창조성과 과정을 강조하는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흩어져 존재하는 ‘다수’의 현실적 존재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일자’가 생성되는 것을 새로움을 구성하는 원리로 보았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의 매 순간과 매 사건에서 새롭게 인식되는 기존의 동일성에서 벗어난 이 새로움이 곧 부조화의 조화와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적 일탈의 멋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사건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던 사물의 새로운 내재미와 재현의 미를 끊임없이 발견하는 일탈의 멋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이트헤드의 미적 경험과 한국적인 일탈의 멋은 생성되는 새로움을 사건 속에서 발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전통 철학은 순수 형상인 이데아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생성되는 새로움은, 순수하고 영원하며 자기동일적인 형상이 아닌 동적이고 불완전하며 순간의 차이성만을 지닌다고 하면서 경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끝없이 변화하는 삶의 과정에서 사물의 새로움과 차이성을 경험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부인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앞에 전개되는 사건은 비록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우리는 그 사건을 통해 변화되는 새로운 느낌과 깨달음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 느낌과 깨달음에서 현상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정서적으로 고양된 미적 가치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적 일탈의 미는 바로 이런 예술적으로 재현되는 미와 정서적 내재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소설가 정한숙의 <금당벽화>에서 고구려 승려인 담징은 미적 경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사건을 통해 예술적 승화와 내적 성숙의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고구려와 수나라가 전쟁을 하던 시기의 승려이며 예술가인 담징은 일본 법륭사(法隆寺)의 금당벽화를 그려야 한다는 사명감과, 위기에 처한 조국을 떠나온 데서 느끼는 죄책감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는 심리적·정신적 방황의 연속으로 벽화를 그리지 못하며 번민하지만 조국의 승전보를 듣고 극적으로 갈등을 극복하며 종교적 예술혼인 금당벽화를 완성한 것이다. 
 
담징이 화룡점정으로 금당벽화를 완성하는 순간의 사건을 통해 고구려 승려인 담징도, 담징을 비난하는 일본 승려들도, 담징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주지 스님도 감동적인 미적 경험을 통해 열반의 경지를 느끼게 된다. 소설은 이 감동적인 미적 경험을 통해 관음상의 완성이라는 예술적 성취와 종교적 깨달음이란 내적 성숙의 가치를 구현하는 한국적 일탈의 멋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에서 괴로운 현실을 이겨낼 만한 능력을 갖지 못했던 송영감은 현실적 한계를 절실히 인식하게 되자 애증과 욕심을 버리고 초탈하고 비장한 심정으로 마지막 생명을 발산하며 자신만의 예술적 완성에 도전한다.
 
독 가마 속에 들어가 깨진 독 조각 위에 단정히 무릎을 꿇는 송영감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예술적 본질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독 가마의 깨진 독 조각 위에 무릎을 꿇는 사건에서 예술적 혼을 승화시켜간 송영감의 행위는 정신적 고양을 통한 미적 가치의 극대화란 점에서 한국적 멋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금당벽화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의 사건, 독 가마 속에서 죽음과 마주하며 예술과 삶의 의미를 깨닫는 사건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이 사건은 담징이나 송영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순간마다 발생하는 사건 속에서 경험하는 미적 경험과 새롭게 생성되는 창조성은 한국인들의 미의식을 반영하는 ‘멋’의 개념에 내재되어 있다. 자기동일성에 집착하지 않고 차이성을 생성하려는 미의식인 한국적 일탈의 멋은 머무르거나 고정되지 않고 끝없이 흐르는 과정 속에서 새로움과 창조성을 만들어 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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