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 ‘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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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 ‘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
  • 유선종 기자
  • 승인 2016.08.0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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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일부터 10월23일까지 개최…조선시대 도자 제기 98건 118점 공개

▲ 독창적인 백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은 테마전 ‘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를 8월2일부터 10월23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도자 제기 98건 118점(외부기관 11건 11점 포함)을 한데 모아 도자 제기를 주제로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이 전시를 통해 도자기로 만든 조선 제기가 지닌 특징과 의미를 파악하고, 유교 문화의 확산과 함께 도자 제기가 애용되는 과정을 조명한다.

제기는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올리고 복을 내려 받음으로서 시공간을 넘어 공동체를 묶어주는 그릇이다. 제기는 금속, 목재, 도자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도자 제기는 조선 초에 금속의 심각한 부족으로 국가제사에서 금속제기를 일부분 대신하게 됐다. 이후 도자 제기는 조선시대에 걸쳐 ‘예(禮)’의 상징이자 예술품으로서 뚜렷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도자 제기는 15~16세기, 16~17세기, 18~19세기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각 시기별로 도자 제기의 특성이 뚜렷하며, 각각 모방과 독창적인 변모를 거쳐 완성의 단계에 이른다. 유교문화의 확대에 따라 사용자층이 점차 왕실에서 향교, 사대부까지 넓어지면서 도자기 문화가 파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15~16세기를 중심으로 조선 왕실와 관청이 제기도설(祭器圖說)의 금속제기를 본떠 제작한 도자제기에 대한 것이다. 조선 초에 상감분청사기 제기는 제기도설의 금속 제기 모양처럼 세밀하게 장식됐다. 그러나 점차 조화, 철화, 귀얄, 덤벙분청사기의 단계로 가면서 생략과 변형이 시도됐다. 이어 관요(官窯)가 설치(1466~1469)된 후에는 백자로도 제기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현재 남아 있는 도자 제기는 보, 궤, 작, 준, 이 등이다. 그 종류와 제사에서의 쓰임을 살펴보고, 각종 조선시대 제기도설의 도해와 함께 전시했다.

▲ 백제제기.

‘황금 눈구름무늬 준모양 제기(粉靑沙器黃目尊形祭器)’ (14세기 말~15세기 전반)와 ‘연꽃무늬 조(粉靑沙器陰刻蓮花文俎)’ (15세기)를 처음으로 소개한다. 준모양 제기는 황금 눈과 구름무늬가 장식된 제기로, 중국 예서에 부합되는 제기가 조선에서 제작된 예이다. 또한 연꽃무늬 조는 조선의 제기도설에 나오는 목제 제기를 도자기로 제작한 예이다.

2부는 16~17세에 제작된 독창적인 백자 제기에 대해 살펴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전란으로 피폐해진 향촌사회의 결속과 유지를 위하여 제사가 성행했다. 전란의 피해와 제사의 성행은 백자 제기의 질과 형태, 그리고 생산에 영향을 미쳤다. 제기가 도자기로 만들어지면서 점차 도자기에 맞는 특성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16세기에 백자 제기는 장식이 과감히 생략되고 특징이 과장되었고, 17세기에는 완전히 추상적이고 독창적인 제기로 변모 됐다. 굽 측면을 삼각형(三角形) 또는 반(半)타원형으로 몇 군데 도려낸 분할굽과 몸체의 세로 톱니무늬‘거치문(鋸齒文)’ 장식 띠가 특징이다. 아울러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서 발견된 백자 제기도 선보일 예정이다.

3부에서는 가장 조선다운 백자 제기가 완성되는 18~19세기 제기가 전시된다. 18세기 이후 양반이 증가하면서 가문의 제사도 늘어났다. 사대부가를 비롯한 일반 집안에서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사당에서 사용됐던 제기는 굽이 높은 백자 제기이며, 상당량 생산됐다. 여기에는 청화로 ‘제(祭)’가 쓰여져 있기도 하다. 사대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애용된 단정한 선과 면, 정결한 백색의 제기들이 전시된다. 제사의 각 절차에 사용된 도자 제기를 알아보는 영상과 전시코너도 마련된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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