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현지 상황에 적합한 동포정책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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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현지 상황에 적합한 동포정책이 필요한 때”
  • 김민혜 기자
  • 승인 2016.07.2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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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차 재외동포포럼,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중남미 이주와 정착과정’
▲ 제75차 재외동포포럼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중남미 이주와 정착과정’을 주제로 발표한 전남대학교 임영언 연구교수

재외동포신문이 후원하는 제75차 재외동포포럼이 2016년 7월 19일 오후 4시, 국회의원회관 제10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전남대학교 임영언 교수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중남미 이주와 정착과정’을 주제로 최근의 연구 결과를 발제했다.

일본 170만, 중국 150만, 한국이민 5만명

브라질 한인타운은 패션·의류타운을 중심으로 형성돼있다. 브라질로 이민한 많은 한인들이 의류 도·소매로 성공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브라질 내 중국 이민자의 수가 150만 명 수준으로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인들의 의류사업에도 영향을 미쳐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졌다.

1900년대 초반에 시작된 일본 이민자는 170만명이고, 일본 이민자의 60~70%가 계속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재외동포포럼은 5~6만명 규모의 브라질 한인사회의 현황 설명을 듣고, 결속과 역량 강화에 대한 논의를 펼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임 교수는 브라질과 한인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브라질의 역사와 브라질 한인 이주 역사부터 언급했다. 

초기의 한인 이민역사

공식 인구 약 2억 1천만 명인 브라질은 국토면적 세계 5위의 넓은 땅을 자랑한다. 백인 48%, 혼혈 44%, 흑인 6.8%, 황인 0.5%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있으며 1530년부터 1882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지낸 역사가 있어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현재 상파울루를 중심으로 5~6만 명 수준으로 집계되는 브라질 한인사회는 1960년대 농업 이민이 활성화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이민이 시작되기 전인 1900년대 초반에는 일본인 농업이민이 활성화될 때 이 그룹에 합류한 일본 국적의 재일코리안들이 있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석방된 반공포로들이 브라질행을 선택하기도 했다. 5·16 군사혁명 이후 강제퇴역 당한 국군 장교 출신들도 브라질에 정착하면서 1963년 브라질 이민이 공식적으로 시작될 때 이들은 한인 이민자들의 브라질 진출 가교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는 5차에 걸친 ‘농업 이민기’가 있었다. 제1차 농업이민은 1963년 2월 12일, 전향군인 11명과 17세대 92명의 이주로 시작돼 이후 1,300명가량이 브라질에 입국했다. 농업이민으로 브라질에 온 한인들이 도시로 대거 이주하자 브라질 정부는 1968년, 한국 농업이민 금지 정책을 폈다. 1971년에는 ‘기술이민’ 자격으로 1,400여 명이 브라질 땅을 밟았다.

1970년부터 1985년까지는 불법 이민이 횡행했다. 1972년 브라질 정부의 한인 이민 금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서독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종사했던 이민자, 베트남 계약 노동자 일부, 태권도 사범 등이 파라과이·볼리비아 등을 경유해 브라질로 재 이주했다. 

본격 이민행렬과 한인 의류산업

1985년부터는 글로벌화 추세를 타고 연쇄적인 이민행렬이 시작됐다. 1980년~1990년에는 가족·친척의 초청에 의해 상파울루 아크리마숑, 봉헤찌로, 브라스 지역으로 오는 한인들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의류도·소매업에 신 이민자들이 초기 이민자들과 합류하며 브라질 한인타운을 형성하게 됐다.

상파울루 봉헤찌로 패션타운에는 많은 한인들의 상점이 밀집해있다. 가장 긴 패션거리로 알려진 Rua Jose Paulino는 약 800m에 이른다. 이 곳에서는 일반 의류 소매업이 주로 이루어진다. Rua Aimores, Rua Professor Lombroso는 도매업 거리로 고급의류의 판매가 중심이다.

중국인 유입이 많아지면서 중국 시장과 직거래하는 상인들이 늘어나 일반 의류 판매나 중개무역을 하던 상인들은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고급’을 선호하는 브라질인들도 여전히 많아 한인 의류타운은 한국 고급의류 시장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다. 

임영언 교수는 브라질을 방문해 브라질 현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며 한인사회의 중심이 된 이민 1,2세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들은 “원칙을 지키고 자기 사업 발전의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 기술발전을 위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기 힘든 수준에 도달하면 돈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고 말하며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시장의 선점자’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인사회의 현황과 문제점

의류업으로 성공하는 한인들이 늘어나면서 한인 공동체의 활동도 활발하게 됐지만 한인사회 결집에는 애로사항들도 많이 남아있다. 한인회 건물이 봉헤찌로 한인타운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한인들이 모이기가 쉽지 않다보니 한인교회들이 한인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된 상황이다. 봉헤찌로에는 약 60개의 한인교회가 있고 이곳에서 8,500명가량의 교민이 모인다. 그러나 한인회가 아닌 교회가 중심이 되다보니 모든 한인을 대상으로 일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임 박사는 지적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차세대 교육과 관련된 부분이다. 브라질 이민자들은 현지 정착과 융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모국 관련 차세대 교육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브라질 한국학교에는 유치원생 87명과 초등학생 70명 등 157명이 재학하고 있지만 중·고등학교 과정은 폐교됐다.

브라질의 교육 시스템이 잘 발달돼 있는데다 포르투갈어를 익히고 현지 사회에 적응해나가야 하는 문제도 남아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민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은 현지 학교로 진학시킨다. 임영언 교수는 한국 정부의 이민자 차세대 정책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하며 개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임영언 교수는 “브라질 이민사회는 민족 간 계승이 뚜렷한 편”이라며 “최근 중국 상권의 부상으로 인한 불황 타개를 위해서는 새로운 이민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또한 “모국과의 거리가 상당해 브라질로 영구 정착하는 한인들이 많은 만큼 현지화를 고려한 새로운 정책과 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발표를 마쳤다.

정부의 재외동포 지원정책

발제 후 이어진 토론 시간에는 “해외진출을 위한 구체적이고 지속력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에 참석자들이 뜻을 모았다. 본지 이형모 발행인은 “동포 개인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재외동포를 일정 부분 지원해야 하는 한국정부도 뚜렷한 방향성을 가진 정책으로 뒷받침해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임영언 교수는 “구체적 정책이 없다보니 개인플레이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점을 선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최근 급성장 중인 중국 교민사회의 모습을 통해, 친분이나 연고가 없어도 능력 있는 신참 동포들을 지원하고 활용하는 네트워크 형성을 배워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그리고 “170만 일본 이민을 초기 이민 단계부터 100년 넘게 긴 호흡으로 지원해 온 일본 정부의 정책이나, 150만 중국 이민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전개하는 경제적, 외교적 노력을 배워야 한다”는 의견에도 참석자들 모두가 공감을 표했다.  

다민족 사회인 브라질에서는 인종차별이 별로 없어 교민들도 현지 문화에 거부감없이 융화되는 면이 많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모국인 대한민국과의 물리적 거리가 상당하다보니 심리적 거리감도 자연히 발생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은 ‘한국식’ 교육만을 강조하고 있어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크다”고 안타까워하며 “현지 적응을 위해 노력하는 브라질 교민들의 고충을 잘 읽으면서 발전시킬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포럼을 마무리했다. 

[재외동포신문 김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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