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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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④
  • 나채근 영문학박사
  • 승인 2016.07.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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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예술의 미에 한정되지 않고 정서적 고결함을 지닌 정신적인 멋
▲ 나채근 영문학박사(영남대학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과')
한국인들은 균형잡히고 정교한 인위적 아름다운 멋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자연미와 예술미는 단순미와 소박미를 바탕으로 한 일탈의 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과 조화되는 굽어진 소나무와 굽이치는 개울, 그리고 봄이면 진달래 피고 겨울이면 산토끼 잡는 나지막한 봉우리의 부정형적 이미지에서 아름다운 멋을 추구하였고, 투박한 막사발이 지닌 부조화의 조화에서 자연스러운 일탈의 멋을 느낀다. 
 
그리고 한없이 느리다가 예측할 수 없이 휘몰아치는 템포와 동작의 춤사위나, 걷잡을 수 없이 관객의 감정과 흥을 돋우는 판소리에서 솔직하고 인간적인 멋을 경험한다. 그러나 한국의 미가 자연이나 예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정서적 경계를 넘어선 실천적 도(道)에도 한국적인 멋은 내재되어 있다. 
 
신라의 대표적 화랑으로 사다함(斯多含)이 있었다. 사다함은 많은 왜병을 포로로 잡은 공적으로 노예와 토지를 나라로부터 하사받았지만, 하사받은 노예를 모두 풀어주고 부하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었으며, 친한 친구가 병사하자 자신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인물이다.
 
사다함의 일화에는 윤리적·도덕적으로 승화해간 한국 풍류정신의 멋이 잘 구현되어 있다. 노예를 해방시켜 준 것은 선(善)을 행하는 불교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고, 토지를 부하에게 나누어 준 것은 박애(博愛) 정신을, 그리고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다가 죽은 것은 우애(友愛) 정신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효에게는 무애(無碍)의 멋이 내재되어 있었다. 원효는 의상과 당나라로 가던 중 한 밤중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움막에 찾아 든다. 그리고 잠을 자다가 갈증을 느껴 주위에 있던 바가지에 고인 물을 달게 먹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잠잤던 곳이 무덤이고 먹었던 물이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란 것을 알고 구역질을 하는 가운데 불현듯 모든 사물의 현상은 마음의 작용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게 된다.
 
그길로 신라로 돌아온 그는 이상적 자유주의자로써 파격과 무애를 실천하며 현묘한 도를 설파하였다. 원효는 성속을 자유롭게 넘나들었지만 치열한 구도자로서의 엄격한 내면을 지니고 현실 속에서 불교의 교리를 실천해 간 수행자였다. 
 
원효는 생사와 열반, 윤회와 해탈이 결국 한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심(一心)에서 출발하여 화쟁(和諍)사상의 원리로 이분법적 분별을 지워버린 인물이었다. 그의 일심(참마음)사상은 단지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실천과 경험에 의해 완성되고 있다. 이후 원효는 포용과 이해로써 모든 차별과 편견을 감싸고 당시 신라 사회에 퍼진 지배층의 권력 투쟁과 신분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열이라는 어두운 면을 밝음과 조화로 치유하려고 하였다.
 
또한 세속의 욕심과 일상적인 틀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로움으로 살다간 거문고의 명인 물계자, 빈한한 선비로서 세상일에 얽매임 없이 달관된 삶을 유유자적 살다간 백결, 군인으로서 초인적인 삶을 살았던 을지문덕, 계백, 이순신도 역사 위에서 고귀한 이상과 자유로운 정신을 구가했던 인물들이었다.
 
이렇듯 한국적인 멋은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에 한정되지 않고 정신적·정서적 고결함을 지닌 미적 가치를 추구하였다. 인격적, 도덕적 가치판단의 규범을 형성하며 풍요롭고 너그러운 정신적 자유로움으로 일탈의 멋을 실천해간 멋 역시 한국적인 멋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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