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상태바
[우리말로 깨닫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6.30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현용(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

가족 중에 누가 아픈 것만큼 큰 걱정거리가 없다. 자신이 아픈 것도 큰일이지만 가족이 아픈 것은 그에 못지않은 고통이 된다.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인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일이 어쩌면 가족의 아픔이 아닐까 한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집 안에 어둠이 자리하게 된다. 자신의 가족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래서 더 간절하다.

그런데 자식이 아픈 것과 부모가 편찮으신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자식이 아무리 오래 아프다고 하더라도 부모는 자식을 포기할 수 없고, 힘들더라도 이겨내고 자식의 치료에 몰두한다. 하지만 부모가 편찮은 경우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지가 약해지고 자꾸 핑계를 대게 된다. 그때 생각나는 속담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어떤 뜻일까? 어떤 때 사용하게 되는 말일까? 좋은 말인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우선 안타까운 속담임을 전제해 두고 싶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랜 병구완에 지쳐서 자꾸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직장도 있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는데 부모의 병을 돌보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치료비도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모든 정성과 걱정으로 부모를 모시지만, 여러 번 반복되는 병과 나아지지 않는 치료에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나이 드신 부모의 병은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병구완을 함에도 점점 정도가 심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자식이 나약한 모습을 보여도 주변 사람들이 나무라기 어렵다. 이때 쓰는 표현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저렇게 지친 모습을 보일까 위로하며 사용하는 말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년씩 계속되는 간병에 대한 이해의 표현이기도 하다. 어렵지만 좋은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변에 부모가 편찮으신 집이 있다면 늘 위로해 주고 힘을 북돋아주어야 한다.

이 속담을 부모님이 쓰신다면 가슴 아픈 표현이 된다. 자식이 애써서 하는 간병을 보면서 부모의 마음이 아려온다. 부모는 서운함보다는 미안함이 커져서 답답한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종종은 아예 직접적으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고, 종종은 하셔서는 안 되는 끔찍한 말씀도 하신다. 부모의 마음은 그렇다. 내가 아파서 자식이 힘든 게 더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부모는 내 병구완을 하는 자식을 보면서 아프고 슬프다. 그래서 아픈 부모님은 눈물이 많다. 눈물은 자신의 병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내리사랑의 반대말은 ‘치사랑’이다. 보통 부모의 자식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하고 자식의 부모 사랑을 치사랑이라고 한다. 이 속담은 부모의 사랑을 절대로 자식이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부모를 잃은 아이를 고아라고 하는데, 아이를 잃은 부모에 대한 말조차 없는 것은 그 고통을 가늠하기 어려워서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부모의 사랑은 한이 없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은 당연히 자식이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자식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부족한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 시간이 지났다고 마음이 약해졌구나, 내가 아팠다면 부모님은 나에게 어떻게 하셨을까 되새겨야 한다. 긴 병에도 나약해져서는 안 된다. 자꾸 핑계대고 싶은 마음을 되살펴 보아야 한다. 효도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하는 것이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