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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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③
  • 나채근 영문학박사
  • 승인 2016.06.2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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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 입자보다는 파동, 점보다는 선에 친근한 개념
▲ 나채근 영문학박사(영남대학교'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과')
삶을 영위하는 형태에 따라 정착민과 유목민이 있을 수 있다. 정착민은 정해진 소유지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그들은 농경지를 경작하기 위해 물의 흐름을 막거나 변경하는 제방이나 수로를 필요로 한다.
 
반면 유목민은 할당된 영토를 소유하거나 사람이나 동물의 흐름을 막는 울타리를 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간다. 유목민은 정주하지 않고 끝없이 탈영토화해가는 데 이런 특성을 노마디즘(nomadism)이라고 부른다. 
 
정착민의 삶의 형태건 유목민의 삶의 형태건 저마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항상 변화와 생성을 통한 새로움과 창조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노마디즘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노마디즘이 입자(粒子)보다는 파동(波動)에, 점(點)보다는 선(線)의 개념에 더 친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양문화를 점의 문화라고 했을 때 동양문화는 선의 문화라고 한다. 서양문화는 이동과 변화의 특성보다 개체의 중요성을 더 중시하는 까닭에 점의 문화라고 한다. 가령 서구의 음악에서 연주자는 마음대로 곡을 늘이거나 줄일 수 없다. 박자든 음표든 하나라도 고쳐서는 안 된다. 악보에 맞게 충실하게 연주해야 하는 구조이다.
 
또한 교양악 연주에서 보듯이 빠른 알레그로 악장이 오면 반드시 느린 안단테 악장이 뒤따르며 균형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서양음악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이원론적 특성을 갖는 것은 선의 개념보다는 부분 부분을 강조하는 점의 개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반면 선의 문화는 노마드적 개념을 수반하고서 동일한 지평에서 심화되는 정서적 일관성으로 감정과 정서를 고양시켜 자기향유해가는 문화이다. 한민족은 정착민임에도 불구하고 그 유전자 속에 노마드적 인자가 있음인지 역사적으로 차이성을 만드는 역동적인 문화를 생성해왔다.
 
예를 들어 악보가 없는 시나위 음악은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가락을 늘이고 사설을 첨가하는 융통성과 여유를 지니고 있고, 산조는 느린 진양조에서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일관되게 상태의 변화를 지속하며 절정의 상태를 이끌어 간다. 이때 쓰이는 엇몰이 장단 역시 일상적이고 정형적인 장단이 아닌 변형되고 어긋난 장단으로서 생동하는 리듬감을 주고 있다. 
 
이렇게 한국 음악은 일관된 하나의 요소와 내용으로 그 최종 지점까지 지속시켜 완성을 이루어 간다. 그 과정에서 일탈이 작용하여 완성도를 한층 심화시키는 것이다. 연주자는 같은 연주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스스로 문리(文理)가 트여 자유자재로 곡을 변주시키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자연스레 생겨나오는 엇박자의 일탈은 연주자와 관객의 혼연일체를 유도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에는 서양이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이에모토' 같은 장인-도제 시스템이 없다. 이 시스템에서는 스승이 자신의 예술을 전승시키기 위해 가문(家門)과 같은 구조를 만들어 제자에게 자신의 기법을 전승하고, 제자는 그 스승의 예술적 기법을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그 기법을 비전으로 전수받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스승은 일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단계적인 교수법으로 가르치는 것 외 에 제자의 역량에 맞게 가변적인 가르침을 수행한다. 제자 역시 스승의 음악을 전수하여 연주를 한다 해도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미하고 변형하여 독특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형성해 낸다.
 
일탈과 새로움을 수반하고서 스승의 가르침을 넘어 자신만의 차이성으로 생성하는 자기향유의 초월된 경지는 이원화되고 구조화된 정태적 문화가 아닌 동태적이고 역동적인 노마드적 문화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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