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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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②
  • 나채근 영문학박사
  • 승인 2016.06.0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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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나멘, 타성과 관성에서 벗어나려는 일탈
▲ 나채근 영문학박사(영남대학교'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과')
처마 밑에 앉아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이따금씩 수평적으로 튀어나오는 빗방울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클리나멘(Clinamen) 혹은 일탈이라고 부른다.
 
물리학적으로 클리나멘은 관성적인 운동과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힘이지만, 철학적 의미의 클리나멘은 에피쿠로스(Epikouros)에서 비롯된 것으로 타성과 관성에 맞서 이에서 벗어나려는 일탈을 의미한다. 
 
일탈이라고 하는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탈선, 전복, 혼란의 이미지를 지닐 수 있으나 기존의 단조로운 질서와 구조에서 새로움(novelty)과 창조성(creativity)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서 한동안 주행하고 나서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한다면 이는 단순한 궤도 이탈이 아니라 새로운 활력과 생성을 위한 창조적 일탈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움이란 일탈의 모습을 한국의 자연과 문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뻣어간 소나무, 에둘러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 강물과 하늘과 어울려 나지막이 굽이치는 봉우리. 이런 자연물들은 곧고 바른 선형적 이미지를 갖지 못한 비선형적 모습이지만 더 친근하고 아름다운 멋을 선사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곡선 일변도에서 갑자기 살짝 솟아오른 버선코라든가, 완만하게 내려오다가 끝 지점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기와지붕의 종지곡선은 일상의 정형에서 벗어나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판소리에서 ‘아니리’의 일탈은 단연 두드러진다. 판소리는 리듬을 가진 소리부분과 일상적인 대화로 이어지는 언어부분인 아니리로 이루어지는 데, 아니리는 소리가 진행되는 동안 줄거리나 극적인 장면을 말로 설명하는 기능을 지닌다. 이 부분은 일정한 격식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소리를 하는 창자(唱者)마다 자신의 개성과 끼를 발휘하여 청중을 사로잡는다. 때론 유머나 기지로, 때론 상스럽고 비속한 육두문자로 청중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만족과 즐거움을 유발함으로써 관객들의 흥을 돋운다. 
 
여기에는 동일한 반복이나 정해진 틀이 없다. 창자는 수없이 반복된 공연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감수성과 표현 능력으로 관객들의 정형화된 감정과 행동의 일탈을 유도하고, 그들의 호응에 따라 매 순간마다 다른 울고 즐기고 감격하는 경험을 부여한다. 이렇게 창자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어 최고의 정서적 만족상태로 이끌어가는 것이 판소리의 아니리가 지니는 일탈의 묘미이다.
 
강강수월래가 보여주는 일탈의 멋도 마찬가지이다. 강강수월래 놀이의 리듬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져서 생명력이 약동하고 발디딤과 춤사위는 속도가 더해지며 역동적으로 변해간다. 원을 그리며 돌다가 맺고 푸는 나선형의 춤동작은 정중동, 동중정(精中動 動中精)의 연속으로 맺히고 풀리는 순환 과정을 반복하며 사람들의 흥을 자아낸다. 달의 상징성을 닮은 강강수월래 놀이는 그 해의 풍년을 소망하는 정월대보름 밤이란 시간과 그 놀이가 발생하는 공간을 노래와 춤으로 채우며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정서를 고양시킨다.
 
풍요로운 수확과 행복된 삶을 기원했던 고대 제천의식의 노래와 춤에서 비롯된 판소리와 강강수월래는 한반도라는 불안정하고 변화무쌍한 지리적 환경에서 오랜 세월동안 다듬어져 자연스레 형성된 달관되고 새로워진 한국인의 삶의 표현이었다.
 
판소리나 강강수월래가 우리에게 그토록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들이 굴곡진 한민족의 삶을 반영하며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흥과 정서를 고양시켜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는 일탈의 멋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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