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법 개악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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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법 개악 안 된다
  • 미주한국
  • 승인 2004.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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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들에 적용되는 한국 병역법 조항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거세다. 정치적 수사로는 세계화, 해외 우수인력 활용 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전근대적인 병역법 적용으로 교포들의 모국 내 활동을 제한함으로써 한민족 네트웍 형성 노력을 저해하고 있다.
이중국적 미시민권자가 17세가 되는 해 12월 31일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든지, 18세가 넘으면 병역의무가 소멸되는 35세까지 국적 이탈을 할 수 없다든지 하는 규정은 뻑뻑해 보여도 한국 내 법 적용의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병역 면제를 받은 이중국적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라도 한국에서 1년 이상 체류할 경우 다시금 징집대상으로 변한다는 현행 규정은 ‘반쪽 면제’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게다가 체류기간 1년을 계산하는 방식도 기이하다. 수개월 한국에서 머물다가 출국 후 6개월 내 다시 한국에 가면 그 동안 해외에 거주하고 있던 기간도 한국 체류 기간에 합산된다.
일례로, 5개월간 한국에 있다가 미국에 돌아온 시민권자가 5개월 후 다시 한국에 들어가면 ‘6개월 내 귀국’ 조항에 걸려 10개월간 한국에 체류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니 두 번째 방문에서 두 달을 머물면 5개월, 5개월, 2개월을 합해 ‘1년 체류’ 조항에 저촉돼 징집 대상이 된다. 내국인의 편법 병역기피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마련된 법규이겠지만 나라간 담벽을 낮추고 교류를 활성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국제화 시대에 걸 맞는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병무청이 병역법을 손질한다면서 최근 마련한 시안은 더욱 가관이다. ‘1년 체류’도 길다고 느꼈는지 ‘6개월 체류’로 줄였다. 이 개정안이 법제화하면 병역면제를 받았어도 한국에 6개월 이상 머물면 징집대상이 된다. 앞으로 나아가는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도 따라잡기 버거운 시대에 자꾸 뒤로 가려하고 있다.
원어민 영어교사로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모국을 배우는 한인들도 이젠 본국 행을 삼가고, 외국회사에 근무하는 인재들도 한국지사 발령을 꺼릴 것이다. 아울러 개정안은 전 가족 영주권 취득자도 기존의 면제조항 대신 35세까지 5년마다 연기신청을 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처럼 해외 한인에 적용하는 병역법은 개방화 시대에 역행하는 ‘닫힌 정책’이다.
병무청이 해외 한인변호사 10명을 초청해 이 달말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그런데 시민권자 징집 파문으로 사실상 간담회 개최의 제공자인 미주한인사회 대표로 2명만을 초청해 형식적 모임에 들러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병무청은 해외 한인들의 여론을 경청하고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고쳐야 한다. 병역법을 개선하지는 못할 망정 개악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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