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는 한민족의 피를 나눠받은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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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노는 한민족의 피를 나눠받은 한국인”
  • 김민혜 기자
  • 승인 2016.05.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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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차 재외동포포럼 <필리핀 코피노 실태와 해결방안 모색> 지충남 박사

2015년 한 해 동안 필리핀에서 우리 교민 11명이 피살당해 대중에 큰 충격을 안겼다. 개별 사건들은 원한 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반한 감정이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코피노(Kopino,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자녀)’문제가 있다. 5월 23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제73차 재외동포포럼(이사장 조남철)에서는 <필리핀 코피노 실태와 해결방안 모색>을 주제로 전남대학교 지충남 교수가 문제를 제기했다.

▲ 제73차 재외동포포럼 <필리핀 코피노 실태와 해결방안 모색> 발제자 지충남 교수

필리핀 대사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필리핀에 머무르고 있는 교민은 8만 9천여 명이고, 1년 간 인적 교류는 170만여 명에 달한다. 기업의 현지 직접 투자, 은퇴이민, 어학연수, 관광 등으로 점차 많은 한국인들이 필리핀을 찾고 있다. 필리핀은 한국과 지리적 근접성이 높고, 물가가 저렴하며, 투자 이민 등에 대해 개방성이 높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필리핀을 찾는 만큼, 방치된 코피노 문제도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생부와 연락이 두절된 대부분의 코피노 가정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다.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식을 방치하는 한국인에 대한 국제사회 비난의 목소리도 그만큼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남성들의 잘못된 성 문화, 낙태를 금기시하는 필리핀의 종교(카톨릭)적 인식 등에 의해 늘어난 코피노는 최대 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절대다수가 생계의 곤란함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필리핀이나 한국 정부 중 어디에서도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코피노가 한국 국적의 우리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정책을 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국가의 전반적인 복지 수준이 열악한 상황이라 코피노 문제에만 특별히 신경 쓸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코피노 가정은 한국과 필리핀 양국에서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지충남 교수는 코피노 문제를 우리 사회와 관계된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일본은 20만 명에 이르는 자피노(Japino)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 개정, 기업 지원, 민간단체 지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생부의 정확한 신원 파악을 위한 지원을 비롯해 민사소송 제기를 도왔고, 민간과 기업 등은 자피노의 교육지원을 실시했다. 또한 자피노를 비롯한 일본계인의 취업비자 허용을 위해 2008년에는 국적법 및 출입국관리법도 개정했다. 어머니가 외국인이면 국적 취득이 불가능하던 기존 법을 바꿔 자피노들이 재외동포 자격을 획득하고 일본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우리나라는 부모양계혈통주의를 기본으로 한 속인주의를 국적 취득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자녀의 출생 당시 부모가 미혼인신고 상황이고, 어머니가 외국인이면 혼인외자(婚姻外子)로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없다. 사실상 코피노들이 생부의 신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한국 국적을 얻거나 동포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지충남 교수는 “코피노를 한민족의 혈통을 물려받은 2세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의 친부 여부를 가리는 인지 절차를 거쳐, 부친이 가족으로 인정한다면 한국 국적 취득을 허용하고, 가족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하고 지원하게 할 수 있는 특례법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정부나 기업이 코피노 문제를 ‘일부 남성들의 개인적, 도덕적 문제’로 치부하고 있지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코피노 문제를 다루는 민간 기구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 많은 수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운영의 불투명성이 문제가 되거나, 언론을 통한 ‘보여주기’식 행사에만 그치는 단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코이카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도 있으나, 대부분이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라 운영상 불안정성이 큰 점도 체계적인 활동을 펼치지 못하는 요인이다. 

지충남 교수의 발제가 끝난 후에는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더 이상 국격이 떨어지는 일은 없도록 해야한다”는 데 공감을 표했다. 또한 “개인의 도덕성이나 인식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다리면 늦는다”면서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더라도 제도 개선을 통해 변화시켜야 하는 문제”라고 뜻을 모았다.

조남철 이사장은 “코피노에게 친부를 찾아 합의금을 받게 해주겠다고 접근해 수수료를 챙기는 변호사나 브로커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며 “친부를 찾는 일에 한국 법무법인들의 사회공헌 팀이 나서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재외동포신문 이형모 발행인은 “실정법의 부족한 부분들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해외 입양인 방치 문제와도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며 “코피노나 해외입양인들을 품어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생부, 생모의 개인적 문제를 넘어 정부와 한국사회의 보편적 의무인 것이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코피노 문제가 언론에서 일회적으로만 취급될 뿐 지속적인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 못한다면, 민간 단체에서라도 꾸준히 노력해서 사회 각계와 정부가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재외동포신문 김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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