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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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문화가 지닌 일탈의 멋…①
  • 나채근 영문학박사
  • 승인 2016.05.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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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발과 덤벙주초 그리고 장사익의 찔레꽃이 담고 있는 일탈의 의미
▲ 나채근 영문학박사(영남대대학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과')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거나 그들의 저서를 읽으면서 가끔 섭섭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들이 동양문화 특히 동아시아 문화를 언급하면서 주로 중국과 일본의 문화만을 제시하여 한국문화의 존재감을 흐릿하게 할 때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의복, 음식, 예술, 문학, 정신문화가 타문화에 뒤진다거나 그들 문화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존재하는 어떤 문화이건 그 민족의 삶의 본질을 반영하는 보편성과 삶의 양태라는 특이성을 구체화시키는 한에서 그 문화는 나름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가령 시대나 민족마다 미(美)의 에피스테메(episteme, 가치체계)는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당대 최고의 미적 기준이었던 양귀비나 비너스의 용모와 체형은 더 이상 오늘날의 미적 기준이 아니다. 입술이 주걱처럼 튀어나와야 미인인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미적 기준도, 많은 링을 감고 목을 새처럼 길게 늘여야 미인인 미얀마 어느 부족의 미적 기준도, 뚱뚱할수록 미인인 서태평양 어느 섬의 미적 기준도 모두 그 시대와 민족의 관습과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상대적 가치 기준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미적 기준은 시대와 민족이 원하는 가치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점과 근거를 달리하면 기존의 인식된 가치는 무의미해지고 만다. 인간의 전반적인 생활양식을 규정하고 있는 문화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절대적 기준이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민족이건 자신의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갖는 것이다. 동시에 배타성에 빠지지 않고 다른 문화의 특성을 인정하는 자세일 것이다.
   
한국에도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서양과 차이성을 지니는 문화적 특성이 있다. 대표적 특성 중 하나가 일탈의 미이다. 인위적 대칭미를 가진 일본 자기의 현란한 아름다움을 무색하게 만들고 일본인들의 무한한 찬사를 자아내게 한 막사발의 미적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막사발의 비대칭과 무기교의 기교와 투박함은 일본자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이다. 첩석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중국인들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정형화된 돌을 차곡차곡 쌓아가지만 한국인은 자연석을 가공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그 형태에 맞추어 다른 자재를 결합시키고 있다. 불국사 석축부분의 덤벙주초나 화엄사 천불암의 목재기둥은 한국적 자연미를 살린 일탈의 미를 보여준다.
   
일전에 ‘찔레꽃’이란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의 성악가가 서양식 화성을 이루며 부르는 노래였다. 더없이 고운 미성과 조화로운 화음으로 악보에 따라 우아하게 부르는 노래였다. 오래 듣고 있으니 단조로울 정도로 같은 화음과 템포로 부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장사익의 ‘찔레꽃’은 그렇지 않았다. 부를 때마다 관객의 호응에 따라 장단이나 빠르기가 변이되었다. 가수와 관객과 공연장이 접속하는 방식에 따라 매번 비선형적 역동성으로 새로운 느낌의 혼연일체를 생성해내었다. 투박하지만 호소하는 듯한 그 흐느낌은 한국적인 정서와 신명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는 한국음악적 요소의 변화와 일탈이 한국문화의 멋과 잠재된 정서를 실제로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한다.  
   
막사발과 덤벙주초와 장사익의 노래가 보여주는 일탈의 미는 단순히 일탈을 위한 일탈이 아니다. 수없는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한 기법의 완성과, 주체와 대상이 하나 되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가능한 일탈인 것이다. 거듭된 화학 작용으로 인해 술이 익어 가듯, 켜켜이 쌓여 하나의 지층이 되고 산이 형성되듯, 시간이 흘러 밤송이가 터지듯, 100〬   c 가 되어 물이 끓어 오르듯, 강도와 역량이 쌓여 도달하는 경지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일탈의 미적 가치인 것이다. 이러한 일탈의 멋은 타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문화 만이 지닌 창조적 멋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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