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외에 미래 없는 청춘들, 이대로 방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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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외에 미래 없는 청춘들, 이대로 방관해야 할까?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6.05.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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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리그로 떠나는 한국출신 축구선수들

재기에 몸부림치는 젊은 청춘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와 희망을 주자는 취지로 기획된 KBS〈청춘FC 헝그리 일레븐〉 이란 예능프로그램이 지난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방송의 힘 탓인지 이들의 경기모습을 보기 위해 수천명의 관중들이 몰려들기까지 했다. 단 한번도 관중들의 환호와 관심을 받은 적이 없던 이들 선수들은 처음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지만. 경기 휘슬이 울리자, 있은 힘을 다해 경기 내내 투혼을 불살랐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다시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잠시나마 품었다. 운좋게 방송기간 일부 선수들은 유망구단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이 종료된 후 안타깝게도 이 선수들 중 2부리그 고양 자이크로 FC에 입단한 남하늘 선수를 제외하곤 입단계약이 성공했다거나 다시 제대로 된 기회를 잡았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방송은 그들의 노력을 ‘아름다운 청춘들의 투혼’이라고 애써 미화하려 했지만, 시청자 입장에선 뒷맛은 개운치 않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이 방송의 상업적 논리와 목적에 철저히 이용당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국만을 탓하며 분개할 필요까지는 없다. 적어도 한국 축구계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말이다. 축구명문 광운대 선수 출신 축구에이전시 김재희 대표(UFC 스포츠 매니지먼트)는 “이러한 선수들이 오직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어 말했다. 

방송 당시 서울 FC 최용수 감독 역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청춘 FC 선수들을 쓸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단 우리 팀 선수들뿐만 아니라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 내셔널리그 등 축구를 하는 선수들 중 사연 없는 선수들은 없다. 특히 현재 소속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여전히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단순히 K리그 클래식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청춘FC 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지만, 영입에 대한 문제는 다르다. 일단 우리 아이들이 우선이다. 그들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선수들에게는 최용수 감독의 직설적 발언이 선수들의 사기를 꺾고 다소 맥 빠지게 하는 말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축구계에는 부상에 이은 불운까지 겹쳐 선수생활을 중도에 접은 선수들은 물론 팀 경쟁에서 밀려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사라지는 선수들의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한때 잘나갔지만, 긴 슬럼프에 빠져 더 이상의 재능을 발휘하고 못하고 3부 리그나 직장인리그를 전전하는 선수들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대부분 중도에 꿈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 짐을 꾸린다. 재능은 있지만, 의외의 복병(?)을 만나 선수생활을 중도 포기한 운동선수들도 적지 않다. 그 복병이란 사실상 범죄행위나 다름없는 오랜 금품거래관행(?)을 말함이다. 
 
김재희 대표는 그동안 많이 근절되었지만, 박지성 선수처럼 아주 특출한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선수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병폐가 많이 사라졌지만, 요즘도 대학입시에도 물론이고 프로구단 입단에서조차 공공연하게 뒷돈이 오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요즘 유행어로 떠도는 ‘금수저’ 가 축구계에도 적용된다는 슬픈 얘기다. 현재 뛰고 있는 선수들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했고,  심지어 대학 입학당시 자신의 과거 경험을 털어놓은 선수들도 있었다. 
 
이러한 고질적 병폐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선수 개인과 가족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축구계 발전에도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축구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 축구계의 현실이 이렇다보니,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려, 한가닥 남은 기회를 찾기 위해서 떠나는 젊은 우리 선수들이 요즘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이미 베트남과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 프로축구에는 백 여명 가까운 한국출신 선수들이 뛰고 있다. 이웃나라 태국만도 1, 2부 리그를 합쳐 30명이 넘는 선수들이 뛰고 있다고 전한다.
 
현재 캄보디아 프로축구리그에는 6명의 한국선수들이 있다. 이들 선수들 중에는 19세 이하 청소년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거나 우리나라 1부 리그에 해당되는 K리그에서 뛰던 낯익은 선수들도 포함되어 있다. 나가월드 주전 공격수 박용준 선수를 비롯해, 오주호, 이재준(이상 경찰FC), 장인용, 심운섭 (이상 프놈펜크라운FC),이종호(스와이 리엥FC) 등 한국선수들이 40도를 넘는 불볕더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이들이 이 무덥고 가난한 동남아 나라까지 와서 굳이 축구를 하려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오직 축구가 좋아서다. 한 선수는 “운동선수로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왔다”고 답했다. 사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주전을 꿰차지 못하면 일년 내내 벤치신세를 질 수 없는 게 스포츠다. 후보로 밀려 실전경기를 치르지 못하면 경기감각도 잃고 시간이 갈수록 기량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축구뿐 아니라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은 바로 이런 점을 두려워한다. 운동을 당장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고 싶지만, 우리 사회에는 달리 마땅한 대안조차 없다. 어린 시절부터 유망주로 촉망받으며 오직 축구만 해왔고 축구가 인생의 전부인 젊은 선수들 입장에서도 바깥세상은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자,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일 사회적 안전장치가 거의 없는 탓도 크다. 이렇듯 나이 어린 선수들에게 적자생존의 치열한 생존방식만을 강요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안타까운 현주소다.   
 
때마침 지난 16일 오전 현지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교민사업가 곽상곤씨의 제안으로 선수들의 프로필 사진 촬영이 있었다. 팀간 훈련스케쥴이 맞지 않아 경찰FC 소속 이재준 선수와 프놈펜 크라운 FC 심운섭 선수만 촬영에 임했다. 이들 선수들은 현재 힘든 훈련스케쥴에 현지 문화환경에 적응하느라 여러모로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소식을 접한 한인회를 비롯해 교민사회가 십시일반 돕고 있지만,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하기에는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선수들은 힘든 내색없이 시종일관 환한 웃음으로 포즈를 취해주었다. 이날따라 유난히 이들의 넓은 어깨가 무척 듬직해보였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무쪼록 우리 한국출신 선수들이 아무런 부상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마음껏 펼치고 국위선양도 해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망한다면, 우리 운동선수들이 더욱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은 가운데 오직 열심히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스포츠계가 더욱 각성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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