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25. “영차, 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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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25. “영차, 영차”
  • 김태진 전 맨해튼한국학교장
  • 승인 2016.05.0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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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전 맨해튼한국학교장

5월이다. 자연의 생명들이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어 사랑과 감사가 넘쳐나는 그야말로 계절의 여왕 5월이다.   

한글학교도 5월에는 행사가 많다. 운동회, 어린이 예술제, 학교에 따라 동화대회, 동요대회 등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많이 한다. 

우리 학교는 미국엔 없는 한국의 어린이날을 기념할 겸 운동회를 5월 5일을 전후한 토요일에 치른다. 미국은 원래 사회적 약자-어린이, 노인,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한 배려가 각별한지라 어린이는 늘 보호해야 할 특별한 존재이다 보니 ‘어린이 날’을 따로 만들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의 ‘어린이 날’도 알려줄 겸 이맘때쯤 운동회를 했다. 운동회가 끝나고 기념 선물을 나누어 줄 때 한국의 어린이 날 이야기를 해주며, 우리 재외동포 아이들 또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아이들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 소풍만큼이나 운동회도 꽤나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만국기가 휘날리던 운동장, 아침 문방구엔 청색과 흰색 머리띠를 사는 아이들로 붐비고, 바리바리 음식을 챙겨 들고 모여드는 학부모들… 운동회를 생각하면 푸른 하늘에 흩날리던 만국기만큼 내 마음도 펄럭였던 것 같다.

한글학교 아이들도 봄 학기 최대 행사인 운동회를 간절히 기다린다. 어려운 한국어 공부를 안 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친구들, 선생님, 부모님들과 함께 경기를 하고 응원하는 시간, 그리고 운동회 끝나고 나누어 주는 기념품 또한 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었으리라.

우리가 빌려 쓰는 학교는 운동장이 없는 관계로 매번 학교 체육관에서 운동회를 치렀다. 그러나 예전부터 실행하고 싶었던 가족 소풍도 겸할 겸, 야외에서 운동회를 하기로 하고 적합한 장소를 수소문했다. 여러 곳을 답사한 결과 학교 가까운 곳에 있는 강변 공원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잔디도 있고, 육상 트랙도 있어서 릴레이 경주를 하기에도 좋았다. 바로 옆에 공중 화장실과 수도 시설이 있고, 관람석도 있어 응원하기도 편해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공원 관리소에 필요한 시설을 쓰기 위한 예약을 하고 운동회 겸 가족 소풍을 위한 알찬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교사들과 머리를 맞댔다. 

드디어 운동회 날, 하늘도 화창한 날씨로 우리의 첫 야외 운동회를 축하해 주었다. 아침 일찍부터 김밥과 샌드위치, 과일 등을 싸서 한글학교 가족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한국어 공부에서 해방된 아이들은 더욱 신나 하는 표정이다. 과자 따먹기, 2인 삼각, 풍선 터트리기, 보물찾기, 장애물 경기, 아버지 씨름대회, 가족 릴레이 달리기 등 야외에서 하는 운동회이자 가족 소풍인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을 많이 준비했다.  

아이들이 가장 긴장하는 게임은 장애물 경기이다. 장애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장애물을 넘고 넘은 후 펼쳐야 할 한 장의 종이 때문이다. 그곳엔 한국어로 다음 지시가 쓰여 있어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가볍디 가벼운 종이를 무거운 마음으로 펼친 아이들. 모두들 내용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그 다음 행동을 하니 기특하고 대견할 따름이다. 한국어 교육에 대한 흐뭇함과 감격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공원에 놀러온 지역 주민들도 운동회에 관심을 갖고 하나둘 구경을 한다. 궁금함에 이것저것 묻는 그들에게 학교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자신이 사는 주변에 한인 커뮤니티의 주말 학교가 운영되고 있음에 관심을 갖고 함께 응원해 주니 고맙고 기쁘다. 

드디어 운동회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인 줄다리기 경기이다. 

“영차! 영차!” 

각 팀의 힘찬 응원소리가 공원을 울리고 주변의 주민들도 줄다리기 경기에 참여하여 함께 ‘영차’를 외치니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기가 되었다. 참여한 미국인들은 단순히 줄을 당기는 경기인데 정말 재미있다며 흥분 섞인 환호를 보내준다. 함께한 즐거움과 함께 우리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니 그 기쁨과 보람이 배가 된다.

운동회가 끝나고 우리가 있던 자리를 청소하고 내친 김에 공원 주변 쓰레기도 줍는 대청소의 시간을 가졌다. 열심히 응원해 주던 미국인들도 마지막까지 함께 하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이들과 한글학교에 대한 호감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한글학교의 많은 행사들이 우리만의 축제에서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글학교를 현지의 지역민들에게 알리며 그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많이 갖는다면 지역사회의 여러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 학생들이 보다 자신감 있는 한국계 현지인으로 자라며, 두 개의 문화를 조화롭게 소통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싱그러운 녹음처럼 우리의 아이들이 더욱 푸르고 건강한 한국계 현지인으로 자라 큰 아름드리나무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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