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 한인은 초국가적 시민으로 이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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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 한인은 초국가적 시민으로 이해해야”
  • 김민혜 기자
  • 승인 2016.04.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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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차 재외동포포럼 <해외입양 한인의 현황과 대책> 유혜량 박사
▲ 제72차 재외동포포럼 <해외입양 한인의 현황과 대책> 발제자 유혜량 박사 (사진 박세정 기자)

최근 들어 해외입양 한인에 대한 의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국가간 ‘경계’의 의미가 옅어지는 초국가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해외입양 한인들의 역할과 활동이 부각되면서, 과거 ‘버림받은 존재’ 나 모국과 거주국 사이의 ‘낀 존재(inbetween)’라는 인식을 덜고 점차 초국가적 행위자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해외 입양 관련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남대학교 대학원 디아스포라학과 유혜량 박사는, 4월 25일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제72차 재외동포포럼〈해외입양 한인의 현황과 대책〉에서 해외입양 역사와 사례 등을 통해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유 박사는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된 적 있는 최성진(수지 보글러) 씨의 사연을 예시로 제시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생후 4개월에 버려져 광주 충현원에서 자라다가 5살에 미국으로 입양된 최 씨는 좋은 가정에 입양돼 큰 차별을 느끼지 않고 성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 후 아들을 낳고 양육하면서 자신의 뿌리 찾기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미국 명문 사립고 서필드 아카데미 재단이사를 맡고 있는 등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최 씨는 어려운 형편에 높인 고향의 청소년들을 위해 매년 15,000달러를 기부하기로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많은 해외 입양인은 좋은 양부모 밑에서 자라더라도 성장과정에서 외모의 차이 때문에 ‘내가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고민에 빠진다. 모국에 와서는 문화적 차이로 또 다른 혼란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유혜량 박사는 “독립된 문화와 의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초국가적 시민으로 그들을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해외입양 한인들은 거주국의 국적을 보유한 시민인 동시에, 모국과 혈통적·정서적 유대를 맺는 디아스포라로서 다중 정체성을 보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베르브너(Werbner)의 정의를 빌리면 ‘디아스포라 위치(place of Diaspora)’라고 할 수 있다고 유 박사는 설명했다.

한국의 해외 입양은 한국전쟁 후 미군들이 8명의 전쟁고아를 자국으로 보낸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점진적으로 미국으로의 해외 입양이 제도화·보편화 되면서 1958년부터 2008년까지 20만 건의 해외 입양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부터는 산업화 후유증으로 미혼모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경우가 크게 늘었고, 200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1년에 1,900~2,000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국내 입양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활성화 됐다. 

유혜량 박사는 해외입양인의 수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부분의 입양인 문제는 입양인의 자조적인 활동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1998년, 한국에 체류 중인 해외입양 한인들은 힘을 모아 해외입양인연대(G.O.A.'L ; Global Overseas Adoptees' Link)를 설립했다. 이들은 거주국에서 서로 만남을 갖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입양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가운데, 친부모 찾기나 한국문화·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움직임은 자발적인 단체 및 조직 결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한 해외 입양인은 “해외입양 한인이 한국인인가 외국인인가 묻는다면 정답은 둘 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유혜량 박사는 “입양인들은 한국과 거주국을 잇는 튼튼한 다리로 성장할 수도 있다. 성인이 된 입양인과 모국과의 새로운 관계 형성은 ‘대한민국의 몫’ 이다”라고 말했다. 해외입양 한인은 영토에 얽매이지 않은 정체성을 가진 ‘초국적 시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이들을 교류 협력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상호 이익 증진을 위한 교류 협력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 유 박사의 주장이다.

뿌리찾기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부모와의 상봉이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공공기관의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때로는 부모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만남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절’의 경험은 축적되면서 정치적 이슈로 발전하기도 한다. 해외입양 한인들이 모국 혹은 거주국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는 동안 이들의 디아스포라 의식은 점차 정치화하게 된다. 해외입양인들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한인모임(TRACK)’, ‘해외입양인연대(G.O.A.'L)’, ‘국제한국입양인협회(IKAA)’ 등을 설립해 회원들의 요구와 권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모임과 행사를 통해 의사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해외입양 한인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기대하기에 앞서, 한국의 정부와 사회단체, 학계 등에서 이들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유 박사는 “모국 중심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기획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입양 한인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확보한 후에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혜량 박사는 해외 입양 한인들의 다중적 정체성을 인정하며, 양국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초국가적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지방 입양인 사후관리 단체’, ‘해외입양 한인 역사박물관 건립’, ‘복수국적 허용’. ‘당당한 초국가적 시민으로 인정’ 등의 정책을 제언하며 발제를 마쳤다. 

참석자들은 “해외 입양 한인들이 사실상 비자발적·강제적 이주를 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그들에게 빚을 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사후 관리단체 육성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 신언항 원장은 “우리가 낳은 자식을 우리 사회에서 잘 길렀어야 했는데 그 역할을 다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며 성장 과정에서 힘든 과정을 겪은 분들에게 한국 사회가 진 빚을 갚기 위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2012년 입양인 사후관리에 대한 정책논의가 있었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알게 해 앞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국민 인식 변화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국가차원에서 해결해줘야 할 일이 있는가’하는 질문에는 절차적인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수의 해외 입양 한인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고 거주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 보다는 뿌리찾기 과정에서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친부모가 못하는 역할을 지역사회가 담당할 수도 있다”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변화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본지 이형모 발행인은 “사회 지도층과 언론 등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인간답게 사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해야 한다”며 해외 입양 한인들에게 한국인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게 대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간이 바뀌어야 지자체가 바뀌고, 이것이 바로 국가의 변화로 이어진다. 참석자들은 해외 입양 한인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꾸준한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며 이 날 포럼을 마무리 지었다.

제72차 재외동포포럼에는 발제자 유혜량 박사를 비롯,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 임채완 교수와 지충남 박사, 정소영 박사가 참석했고, 보건복지부 중앙입양원 신언항 원장과 배우식 국장, 목원대학교 산업정보언론 대학원 이민다문화정책학과 정영국 외래교수, 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 이효정 공동총재도 함께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재외동포신문 김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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