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소리] 가족공동체와 나라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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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소리] 가족공동체와 나라살리기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6.04.0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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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신문 창간 13주년을 맞이하며
▲ 이형모 발행인

아프리카 벌판으로 수천 마리의 얼룩말이 줄지어 떼 지어 이동한다.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사자는 다리를 다쳤거나 병든 말을 열심히 찾는다. 그리곤 점차 가까이 접근해서 무리로부터 분리시킨다. 무리로부터 떼어낸 이후에야 사냥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얼룩말들은 공동체를 이탈하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재작년 송파구 삼 모녀가 ‘마지막 월세’를 봉투에 남기고 자살했고, 최근에는 라면 살 돈마저 없어진 청년이 ‘범죄의 유혹’이 두렵다며 목숨을 끊었다. 너무나 정상적인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누구의 보살핌이나 배려도 받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밀려나고 스러져갔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1인 가구로

한국은 1962년에 산업혁명의 시동을 걸었고, 농업과 농촌을 해체해서 사람들을 공단으로 보냈다. 도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농촌의 대가족은 해체되고 도시의 핵가족은 끝없이 늘어갔다. 농촌의 마을 공동체는 도시의 아파트촌으로 바뀌었고, 아파트촌은 핵가족의 보금자리일 뿐이고, 더 이상 마을 공동체는 찾기 어려워졌다.

일터를 따라 멀리 흩어진 형제자매들은 추석과 설날에 부모님 댁에서 만날 뿐,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스킨십을 나누는 공동체가 아니다. 둘만 낳아라, 하나만 낳아라 하면서 한 세대를 지내고 나니, 이제는 1인 가구가 폭증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과 가정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적 성공에서 인간다운 삶으로

가족공동체는 효율적인 ‘경제공동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가족 구성원의 삶 전체를 담는 그릇이다. 건강과 안전을 담보하는 ‘울타리’인 것이다. 가정의 울타리가 무너지면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고, 상처 받으면 쉽게 치유할 수 없고, 경제적으로도 취약해진다. 

그런데 국가사회를 경영하는 ‘정부’는 가족공동체에 대한 문제 인식이 박약하고 정책도 희미하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주권자인 개개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과 가족’을 지켜서 개개인의 복리와 안전을 확보하는 정책을 견지해야 한다. 

지금껏 역대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는 경제성장과 무역흑자 등의 ‘경제적 성공’이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최근의 처방도 규제를 풀어서 아파트를 많이 짓고, 전세 사는 서민들이 은행대출을 많이 받아서 집을 사게 하는 것이었다. 아파트 건설업체는 돈을 벌었겠지만 가계부채는 끝없이 늘어났고, 서민들의 구매력은 증발했고, 내수경기는 실종됐다. 대다수 서민은 내일이 불안하다.


가족 공동체 복원하기

정부는 부동산경기를 부양하느라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나는 것도 괘념치 않는다. ‘가정과 가족’의 안전이 염두에 없는 ‘정부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정부일까? 그들은 끝없이 변명한다. “청년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양극화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나? 어려운 일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가 그런 것 아닌가?”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해서 침묵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해결책이 없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첫째로 우리 사회의 ‘목표 설정’이 바뀌어야 한다. 무역대국, 무역흑자, 경제 성장률, 더 높은 국민소득 등 ‘경제적 성공’만이 해결책이고 목표라고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희생 제물로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면 정부는 반드시 실패한다.

둘째로 노인, 청년, 여성 모두의 자살률 세계 1위를 벗어나게 할 ‘정책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취직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을 정책목표로 해야 한다. ‘가족공동체’를 복원해내야 한다. 이러한 정책전환과 목표전환을 해내지 못하면, ‘나라’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몰락한다. 지금은 국가경영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바꿀 때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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