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24. “안전요원은 같이 안 타나요?”
상태바
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24. “안전요원은 같이 안 타나요?”
  • 김태진 전 맨해튼한국학교장
  • 승인 2016.04.07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태진 전 맨해튼한국학교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쉬는 주말에도 한글학교 학생들은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가느라 바쁘다. 재미있는 만화영화를 보는 대신 어려운 한국어를 배우러 가야 하니 그 불만 또한 크다. 

“나도 다른 친구처럼 만화영화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축구도 할래. 한글학교는 재미없단 말이야.” 

아이들의 이런 불만을 줄이기 위해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자료를 공유하고 머리도 맞대 보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이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다 보니 마음만큼 아이들에게 맞는 활동적인 수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미국 교육 현장을 경험하거나 학생 중심 수업에 대한 연수를 알아보던 중, 활동위주의 아동교육 프로그램을 소개 받았다. 뉴욕에서 좀 떨어진 곳이어서 집을 떠나 생활해야 하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연수의 내용을 적극 반영하여 아이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학교를 만들어 보겠다는 희망으로 기꺼이 일주일을 투자했다. 

연수엔 방학을 맞아 주변 도시에서 온 교사들이 주로 참석하였다. 자기소개를 하며 화기애애하게 시작되었지만, 하루 8시간 씩 강행되는 수업에다 숙제 또한 많아 힘이 들었다. 대부분의 숙제가 지식적인 것보다 발표하는 형식이라 유창하지 않은 영어실력 때문에 힘겨웠지만, 새로운 교육 철학과 방식을 알아가는 기쁨이 컸다. 연수 과정은 이론과 활동을 배우고 수업참관(observation)도 하는 등 배운 내용이 실제적으로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알 수 있어 매우 유용했다.

연수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각자 배운 활동 중에서 하나씩 수업을 운영하는 발표를 했다. 수업 방법은 노래와 각종 도구를 이용하는 법, 다른 도구 없이 스토리텔링만으로 운영하는 법 등 다양하다. 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하게 됐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로선 말로만 수업을 운영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표현력이 뛰어나다며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줬다.  

내가 맡은 주제는 ‘가을 소풍’이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놀다 오는 내용을 온전히 나의 말과 표정, 몸동작으로 표현함으로써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소풍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전체적인 내용이 있는 원고가 있어 많은 참고가 됐다. 서술형으로 된 원고를 이야기 형식으로 바꾸고, 아이들 정서와 흥미에 맞게 재구성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때부터 원고를 외우고 표현 연습도 하며, 성공적인 발표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나의 발표다. 연수생들이 학생이 되어 내 말에 같이 움직여 준다. 바깥을 보라면 일제히 밖을 바라보고, 재킷을 입으라는 말엔 재킷을 입는 시늉을 하고, 신발을 신으라는 말에 우르르 한 곳으로 몰려가 신발 신는 시늉까지 한다. 일렬로 세워 밖으로 나가자, 한 학생이 ‘저기 낙엽이 떨어져요’ 라며 상상력을 실어줬고, 수업에 싱싱한 리듬이 실린다. 가을 풍경을 구경하며 놀이공원에 도착하고, 표를 사서 공원에 들어간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더욱 흥분된 마음을 실어 공원 안 풍경을 말했다.

“와아~ 저기 봐, 회전목마가 있다아~” 
“어? 이 신나는 소리는 뭐지? 으응~ 저기 밴드가 공연을 하네. 같이 보러 갈까?”
“얘들아~ 저기 진짜 말도 있어! 우리 말 타러 가자.” 
“네에에~~”

나의 학생(연수생)들은 말을 탄다는 말엔 더욱 신나는 표정을 지으며 환호로 답해줬고 내 목소리엔 더욱 힘이 실린다. 

“자, 각자 자기가 타고 싶은 말 옆에 서세요. 안전요원이 여러분 말 타는 것을 도와줄 거예요. 다 탔어요? 자아~ 그럼 출발!” 

나의 ‘출발’ 소리가 끝나자마자 한 연수생이,

“선생님, 안전요원은 같이 안 타나요?” 

라며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질문을 한다. 순간 나는 당황했지만 아주 작은 조랑말이라서 괜찮다고 답했다. 

“그래요?” 

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그녀를 보며 ‘아차!’ 싶었다. 원래 선생님이 주신 ‘원고’에는 안전요원이 같이 타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략해 버렸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편집을 해야 했는데 여러 부분 중에서 안전요원 이야기를 빼버린 것이다. 

발표를 마치자 선생님도 연수생들도 발표를 잘했다고, 재미있었다고 나를 칭찬해줬다. 선생님은 나의 표현력이 정말 뛰어나니 교장이긴 하지만 가끔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스토리텔링을 들려주라고 권하기까지 하니 모두들 동의한다며 박수까지 쳐줬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마음 한 구석에서 무언가가 계속 끌어당기는 무거움이 느껴졌다. 바로 내가 원고에서 빼 버린 ‘안전요원’ 때문이다. 

‘학생들에 대한 안전문제!’ 그것이 미국의 어른들에게는 본능처럼 필수적인 것인데, 나에게는 선택 사항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의식 속에는 안전문화에 대한 결여가 잠재해 있었고, 그 결여는 우리 문화에도 잠재된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압축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인권과 안전에 대한 의식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양질의 교육을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필수적인 것은 학생의 안전이며, 좋은 교육의 근본은 그들의 안전을 ‘본능’처럼 챙기는 문화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온전히 현실적인 목적으로, 유용한 수업 방법을 배우러 떠난 연수였지만 ‘안전’의 중요성을 깨달은 소중한 기회였다. 학생의 안전에 대한 의식이 바탕 되지 않은 한, 교육은 이미 그 역할을 폐기한 것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안전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안전과 같기 때문이다. 

4월이다. T. S. Eliot의 시, ‘황무지’의 한 구절을 굳이 인용할 필요 없이, 우리에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봄의 환한 아름다움과 따뜻한 행복을 누리기엔 지켜주지 못한 생명 앞에 한 없이 부끄럽고 죄스러운 달이다.

피어나지 못한 생명에 대한 애도와 함께 안전의 중요성도 ‘잊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