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북한이탈주민의 국적…①
상태바
[법률칼럼] 북한이탈주민의 국적…①
  • 차규근 변호사
  • 승인 2016.03.17 17: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이탈주민 김련희(47)씨는 7일 저녁 6시께 서울 삼청동 주한 베트남대사관 철문 앞을 걸어 나왔다. 김 씨 뒤로 경찰 5~6명이 따라 나왔다.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뉴욕 타임스>, <시엔엔>(CNN) 등 외신 기자들이 이미 소식을 듣고 와 있었다. 국내보다 외국 매체 기자들이 취재에 더 열중이었다. 대사관 철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김 씨가 뒤돌아서 철문 앞으로 달려들었다.  “저는 그냥 내 남편과 부모님, 딸을 보러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에요.”
김 씨는 북한 이탈주민이다. 김 씨 주장으로는 남한에 “강제 억류”돼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국민의 개념)이다. 지난해부터 통일부, 적십자사,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쫓아다니며 자신을 북으로 송환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지난달부터 통일부가 들어서 있는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앞에서 1인시위도 했다. 허사였다.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남북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어 갔다. 결국 김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북한 이탈주민이 북송을 요청하며 제3국의 대사관에 진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겨레신문, 2016. 3. 13.자 “‘망명 신청하러 왔어요.’ ‘일단 집으로 가세요’” 기사)

 

▲ 차규근 변호사(법무법인 공존)

최근, 북한을 이탈해 국내로 들어온 북한 이탈주민이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하면서 주한 베트남대사관에 가서 망명신청을 하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북한 이탈주민 김련희(47) 씨가 그 주인공인데, 북한 이탈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이탈해 국내로 들어와서 정착하거나 제3국으로 떠나는 사례는 많이 알려졌지만, 김련희 씨처럼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하는 사례는 처음이라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주지하듯이, 북한 이탈주민은 헌법과 대법원 판례에 의해 대한민국 국적 보유자로 인정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주권이 한반도와 그 부속영토에 미친다고 돼있고, 대법원 판례는 대한민국의 주권과 부딪치는 어떠한 국가단체나 주권을 법리상 인정할 수 없는 점에 비춰 볼 때 한반도의 일부인 북한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적보유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이탈주민들은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 하나원에서 사회적응교육을 받은 후, 별도의 국적취득절차 없이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1997. 7. 14. 시행)에 의해 바로 취적(가족관계등록부 창설) 및 주민등록이 가능하며 정착지원금도 받는다. 

그러나, 밀입국이나 중국 등 제3국 여권 입국, 북한 이탈 후 제3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경우는 동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며 법무부에 ‘국적판정’을 신청해 관계기관의 조사에 의해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되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국적판정’을 받게 되고, 당사자는 이 판정에 기해 취적(가족관계등록부 창설) 및 주민등록을 하게 된다(이 경우는 정착지원금이 없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통일부는 김련희 씨의 국내 입국 당시에 상당 기간 조사과정을 통해 자유의사를 확인하고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호결정을 내렸으며, 현행법상 우리 국민(보호결정이 된 북한이탈주민)을 북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당사자와 북한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호결정까지 받은 북한 이탈주민이 뒤늦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하다 보니,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의 언론도 주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 이탈주민은 언제부터 위와 같이 보호결정을 받아 보호를 받게 되었을까?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은 1997. 1. 13. 법률 제5259호로 제정되어 6개월 후인 1997. 7. 14.부터 시행됐다. 이러한 법률 제정 직전에, 북한 이탈 주민의 국적 문제에 관해 매우 중요한 판결이 하나 있었다. 오늘은, 이 사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김련희 씨와는 정반대로, 그 당사자는 어떻게든 대한민국 국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이순영(가명)은 1937. 3. 강원도에서 조선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자로서, 8. 15. 광복에 이은 남북분단 이후 북한지역에 거주하던 중 6. 25. 사변으로 부모를 잃고 북한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다가 1960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순영은 중국에 건너 간 직후인 1961년 한국계 중국인인 소외 황 모 씨와 결혼했다가 1963년 이혼했고, 1979년 다시 한국계 중국인인 소외 서 모 씨와 재혼해 살다가 남편인 위 서 모 씨와 함께 돈을 벌 목적으로 1992. 7.  중국정부로부터 중국 여권을 발급받은 후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체류자격을 방문 목적으로 하고 체류기간을 30일간으로 하는 사증을 발급받아 1992. 9. 위 서 모 씨와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다음호에 계속)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