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도 빈부따라 차별…“잘살면 굽신…못살면 문전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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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도 빈부따라 차별…“잘살면 굽신…못살면 문전박대”
  • 국민일보
  • 승인 2004.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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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004-05-30 17:03]
좁은 국토에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일류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길은 결국 사람(인적자원) 밖에 없다.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으로는 제약이 따르지만 시야를 한반도 밖으로만 넓힌다면 우리에게는 600만 해외동포들이 있다. 이들은 현지 상황에 정통하며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누구도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해외동포들을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동포들로 구분해 가며 차별을 가하고 있다.

◇한민족 안 사는 곳이 없다=외교통상부가 2년마다 집계하는 통계에 따르면 2003년 1월 현재 전세계 해외동포는 607만여명에 이른다. 해외에 많이 진출해 있는 이민집단 중 화교사회 5500만명,유태계 1500만명,이탈리아계 550만명,인도계 480만명,일본계 174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어 우리나라 전체 재외동포 규모는 세계 4위권이다.

그러나 인구비율로만 따지면 우리나라가 단연 1위다. 우리나라 인구를 4700만명으로 볼때 전세계적으로 12%가 넘는 숫자가 재외국민에 해당된다. 화교들이 숫자는 많지만 중국인구 13억명의 4%에 불과하다. 화교는 거주지역이 동남아시아와 북미에만 집중돼 있지만 한국동포는 전세계 151개국에 고루 분포돼 있다. 미국이 215만여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 214만여명,일본 63만여명,카자흐스탄 등 독립국가연합 55만여명,캐나다 17만여명 순이다. 재외동포들이 2000명이상 거주하는 국가도 24개국이나 된다.

◇잘사는 나라 동포만 동포인가=재중동포들의 각종 시위현장에 항상 보이는 플래카드는 “미국,일본 거주 교포는 일등 재외국민이고 우리는 이등 재외국민이냐”는 내용이다. 같은 재외동포지만 못사는 나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이나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출입국은 물론 국내에 들어와서도 법적지위를 보장받는다. 땅을 사고 팔 수도 있고,주식투자도 하고 의료보험과 산재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조선족이나 구소련지역 고려인들의 경우 동포가 아니라 ‘불법체류자’이고,그저 ‘외국인 노동자’일뿐이다. 중국동포의 집 대표인 김해성 목사는 “조선족이나 고려인들은 일제의 침략 속에서 징용,정신대를 피해 이주했거나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피 흘려 싸웠던 독립투사들과 그 후손들”이라면서 “이들에게 동포의 혜택을 주지않는 것은 안중근 의사나 윤동주 시인도 동포가 아니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동포간 차별의 근원은 1999년 8월 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법에는 재외동포를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부터 시작이 됐기때문에 그 이전에 출국한 사람들은 동포도 아니고 법적 혜택도 없다는 뜻이다. 전체 600만 재외동포들 중 조선족과 고려인 등 전체 재외동포중 절반에 해당하는 동포들을 배제시킨 셈이다. 이에대해 헌법재판소는 2001년 11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결국 지난 2월 9일 국회에서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들까지 ‘해외동포’로 확대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이 미뤄지면서 현재 재중동포 등에게는 법적으로는 동포지만 실제 출입국과 법적 지위는 보장되지 않는 모순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따라 재중동포들과 국내 시민단체들은 재외동포법 시행령과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등의 개정을 통해 재미·재일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재중동포들도 자유로운 출입국 및 국내 취업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1일 재중동포 100여명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지 않아 심각한 차별행위와 인권침해 조장되고 있다”면서 집단으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또 기독교 및 재외동포단체가 참여한 ‘재외동포 불법체류 사면청원 운동본부’도 지난 23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재중동포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동포 차별행위 및 인권침해 중단 촉구대회’를 열었다.

◇재외동포도 자산이다=해외동포를 모국의 경제발전에 활용한 좋은 예는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의 화교의 역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마오저둥의 ‘화교배타정책’을 ‘친화교정책’으로 전환,화교 우대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현대 중국’ 건설에 중국이 유치한 해외직접 투자 2000억 달러 중 3분의 2가 화교자본이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기에도 재미,재일동포들이 커다란 역할을 해 온 것이 분명하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프레드 버그스턴 소장은 한 학술대회에서 ‘세계 경제속의 한국의 재외동포’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인의 해외이주가 급증함에 따라 한국의 수출은 16%,수입은 14% 늘어나고 특히 재미동포들이 한미양국간 교역을 15%∼20%정도 늘리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참여정부가 중요한 국정과제로 선정,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를 건설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동북아 지역 250만 재외동포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북아평화연대 신상문 부장은 “동북아지역에 산재해 있는 재외동포가 모국 발전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엔진에 기름을 공급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서 “하지만 동북아중심국가 건설계획에는 재외동포가 철저히 배제된 채 전략적인 접근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동포들이 대한민국의 자산이라는 인식 전환과 함께 그에 걸맞는 정책들이 만들어 져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구홍 해외교포문제연구소장은 “오늘날 한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는데 있어 그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해외에 진출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면서 “그동안 우리나라는 해외동포들을 이용만 했지 활용을 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의 김재기 교수는 “600만 해외동포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의 가치가 1200억달러,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1 규모라는 연구보고서가 있다”면서 “이들의 자산을 국내에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전세계 동포들을 네트워크로 묶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현재 상공인과 무역인 중심의 한상(韓商)네트워크를 과학기술,언론 등 다양한 분야별로 특화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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