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보호 ‘뒷짐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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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 보호 ‘뒷짐진 정부’
  • 경향신문
  • 승인 2004.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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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한국인이 또다시 사형위기에 몰린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 정부의 허술한 재외국민 보호 대책에 대한 비판여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탈북자를 취재하던 프리랜서 비디오작가가 15개월째 중국에 억류돼 있으며, 영국에서는 4년 전 사망한 유학생의 시신이 냉동고에 방치돼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중국에만도 탈북자들을 돕다가 체포·감금된 한국인이 10여명”이라며 “그러나 이렇다할 정부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면피용 대책 많아”=최근 두리하나 선교회를 중심으로 시민단체들은 탈북자의 망명과정을 취재하다 중국공안에 체포돼 억류중인 비디오작가 오영필씨에 대한 구명활동을 시작했다. 선교회 천기원 대표는 “2002년 4월 체포된 이후 15개월간 면회가 불허되고 재판상황이 알려지지 않아 공개 구명활동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천대표의 가장 큰 불만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 천대표는 “지난해 8월 같은 활동을 한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은 구금 20일 만에 석방됐다”며 “한국인들은 몇년째 풀려나질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외교부는 공식적으로 석방을 요청했다고 주장하지만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2000년 8월 영국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유학생 이경운군 유가족도 정부의 태도에 가슴을 치고 있다. 이군의 시신은 4년이 되도록 현지 냉동고에 보관중이며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아버지 이영호씨는 “주영 한국대사관이 사건초기 진상규명을 외면하다 몇 차례 이 사건이 보도된 뒤에야 관심을 보였다”며 “하지만 대사관은 면피용으로 관심을 기울였을 뿐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이같은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라며 “차라리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고가 발생하면 바로 해당국가에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며 “중국에 억류된 한국인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풀려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개혁 절실=전문가들은 강대국 앞에서 ‘알아서 기는’ 외교부의 관행이 재외국민 보호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재외동포신문 김제완 편집국장은 “외교부는 기본적으로 국익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민감한 사안마다 상대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웅진 로버트김후원회장은 “처음 로버트김이 수감됐을 때부터 정부는 ‘미국 시민이니까 관여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며 “석방여론이 고조되자 공문 제출도 없이 실무자 면담 차원에서 끝났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영사제도가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20여년간 뉴욕의 교포언론에서 근무한 안동일씨는 “외교부 내에선 영사가 3D업종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영사가 비자나 발급해주는 자리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교민사회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리라고 믿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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