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23. '안전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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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23. '안전사고'
  • 김태진 전 맨해튼한국학교장
  • 승인 2016.03.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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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전 맨해튼한국학교장

3월이다. 대부분의 한글학교가 개학을 했고, 서로 방학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며, 2016년 첫 학기 또한 재미있고 보람찬 학기가 되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교사일 때는 좀 더 재미있고 실용적인 수업을 위한 준비에 집중했지만, 교장이 되고 나서는 그 어떤 것보다 아이들이 사고 나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마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늘 드렸던 기억이 난다. 3살 반부터, 많게는 15살까지 함께 공부하는 학교이니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사를 할 때도 교사의 철저한 지도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터지는 경우도 여럿 있었기에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교장으로서의 긴장감은 떨쳐버릴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고, 무사히 하루가 마쳐지면 그 때의 안도감과 행복감은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었다. 

 12번째 이야기에 썼던 ‘학교 찾아 삼만 리’를 통해 간신히 구한 ‘Children’s Workshop School’은 소중하다 못해 간절함이 넘치는 학교였다. 그러나 건물구조가 너무 복잡하다보니 적응하기 힘들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건축학을 전공하는 보조 학생이 보기 편하게 그린 ‘학교구조도’를 나누어 주고, 또 벽 마다 잘 부쳐놓았건만 그래도 불안하다. 지난번 건물은 위층으로 가려면 복도와 연결되어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되었건만 이사한 학교는 그 구조가 우리나라의 비상구와 흡사하다. 즉 복도에서 문을 열고 나가 계단만 주욱 연결되어 있는 그런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 올라가면서도 층의 표시를 잘 봐야 한다.

 안 그러면 3층 갈 사람이 4층까지 가기도 하고 2층 갈 사람이 1층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그것은 그나마 좀 낫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바깥 방향으로 향한 문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베란다로 나가는 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안쪽 문이 아니라 이 바깥쪽 문으로 나가버릴까 걱정된다. 게다가 이번엔 수업 간 동선의 이동도 많다. 한국어 수업은 2층에서 하고, 음악, 무용은 1층, 단소는 3층, 태권도는 4층. 이러니 아이들이 넘쳐나는 호기심을 발휘했을 때 미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정말 크다. 그러니 항상 노심초사일 수밖에 없다. 

어디서 학생이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차’ 하는 마음이 들며 소리를 따라간다. 상규 어머니가 아들을 달래고 있고, 상규는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울고 있다. 태권도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내려가는 도중 안쪽이 아닌 바깥 베란다로 가는 문을 열고 나간 것이다. 사달은 여기서 났다. 그 문은 열고 나가면 밖에선 문을 열 수 없게 되어 있다. 즉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영영 못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요 문을 열면 무슨 세상이 펼쳐질까?’ 잠깐 호기심을 발휘하고 현실로 돌아오려던 상규에게 눈앞이 깜깜한 상황이 발생한 거다. 당황한 상규가 문을 두드리며 크게 울음을 터트렸고, 다행이 상규가 공부 잘하나 잠깐 보러 올라가시던 어머님이 그 소리를 들은 것이다. 엄마를 보자 엉엉 더 서럽게 운 상규를 안으며, 어머님은 또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드디어 터졌구나… 미로 같은 학교 구조, 밖에선 열리지 않는 문 구조가 야속하고, 좀 더 철저하지 못했던 내가 밉고 속상하다. 너무나 죄송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오히려 상규어머님은 나를 위로해 준다. 

 “우리 아이가 딴 데로 가서 그런 건데요. 그마나 빨리 찾아서 다행이에요. 걱정 마세요. 상규는 제가 잘 달랬으니까요.”

 아이들 이동 시 좀 더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했던 나의 잘못이 크건만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시는 학부모님 마음이 정말 감사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생 이동 시 2명의 책임자를 배정해 보다 철저히 아이들의 이동에 신경을 썼다.

 그런데 또 한 번 일이 벌어졌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 로비까지 담임교사의 인솔아래 아이들 모두 내려왔건만, 부모님들끼리 얘기하는 사이 아이들 몇 명이 없어졌다. 교문은 교사가 지키고 있었으니 아이들이 다시 교실로 올라간 것이 분명한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아차! 또 그 마술의 문으로 나가버렸나 보다.’ 각자 Exit 1~6까지 맡고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본다.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잘못하다간 우리도 못 들어올 수 있으니… 영호 아버지가 아이들을 찾았다. 부모님을 기다리기 지루했던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다 결국 마술의 문을 연 것이다. 수업 간 이동 시에만 집중했던 나의 불철저함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정말 아이들의 안전 문제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의 심정으로 철저, 또 철저함이 요구된다. 어쨌든 학교의 미로 구조에 대한 경종이 두 번 울리자 그 후 ‘마술의 문’으로 인한 사고는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 년 후,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한 학기를 무사히 보냈음에 안도의 숨을 쉬는 마지막 날! 이 날은 1,2교시엔 수업을 하고, 3~5교시엔 학습 발표회와 종업식을 한 후, 학교 식당에서 한 학기를 마감하는 ‘뒤풀이’를 한다. 평소엔 모두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가지만 이 날은 김밥, 만두, 잡채, 떡볶이 등 푸짐한 한국음식이 매개가 되어 한 학기를 정답게 마무리 한다.

 “교장 선생님, 현수가 자전거에 치었어요.”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진정하며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 밖이라고 해 봤자 강당의 문을 열고, 세 걸음 정도에 있는 교문을 열면 바로 거리의 인도이다. ‘학교’라 해도 맨해튼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거리에 우뚝우뚝 서있는 여타 건물들과 똑같은 형태의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강당 입구에서 친구랑 놀던 현수가 교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학교 앞 인도를 통과하는 자전거와 부딪치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어린 현수가 얼마나 놀랐을까? 어깨 부분의 긁힌 상처가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현수를 친 젊은이는 ‘죄송’을 연발하며 풀이 죽어 있고, 변호사인 준기 아버지는 인도에서 자전거를 탄 것은 잘못이기에 경찰을 불러야 한다며 경찰에 신고를 한다. ‘이것이 경찰에 신고까지 할 문제인가???’ 나의 한국적 사고로는 당사자와 잘 이야기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또 법까지 잘 아는 학부모님이 하시는 행동이니 따를 수밖에. 새삼 문화의 차이를 크게 느낀다.

 신고를 한 지 한 3분 정도 지났을까? 경찰차, 응급차, 이어 빨간 소방차까지 출동했다. ‘응급차는 그렇다 치고 그 큰 소방차까지??’ 그게 한 ‘세트’라고 한다. 신고가 들어오면 만약을 대비해 소방차까지 출동하는.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떤 분야이건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사고에 철저히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이 오늘의 미국을 만든 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그 빨간 소방차는 ‘허무하게’ 물러갔지만, 학생의 안전에 대해선 철저하고, 또 철저해야 함을 각인시켜준 ‘빨간’ 신호였다. 


* 소중한 우리 한글학교 학생 여러분, 2016년 첫 학기도 모두 안전사고 없이, 행복하고 보람찬 학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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