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녕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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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녕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가?
  • 노관범 교수
  • 승인 2016.02.1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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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북부에는 소수의 하드자베(Hadzabe)족이 살고 있다. 하드자베족의 구전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살았다. 맨 처음 살았던 사람들을 아카카아네베(Akakaanebe)라고 부른다. 이 사람들은 털북숭이 거인이었는데 짐승을 사냥해서 먹고 살았다. 아무런 사냥 도구 없이 그저 짐승을 째려보기만 해도 짐승이 쓰러져 죽었다. 날고기를 먹었고 나뭇 가지 아래에서 잤다.
 
 
도구의 기술은 진보하는데
 
  그다음에 살았던 사람들을 틀라아틀라아네베(Tlaatlaanebe)라고 부른다. 이 사람들은 털이 없는 거인이었고 역시 짐승을 사냥하였다. 짐승이 영리해져서 째려보아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여 추적해야 했다. 불을 사용해 구운 고기를 먹었고, 동굴이나 바위에서 잠을 잤다. 그다음에 살았던 사람들을 하마크와베(Hamakwabe)라고 부른다. 이 사람들은 앞의 두 사람들보다 몸이 작았고 털이 없었다. 사냥할 때 활과 화살을 사용했고, 개를 키워 사냥에 데리고 갔다. 삶은 고기도 먹었고, 풀과 막대로 집을 지었으며, 다른 사회의 사람들과 물건을 교환했다. 
 
  그다음에 살았던 사람들을 하마이쇼네베(Hamaishonebe)라고 부른다. 이 사람들은 앞선 시기의 사람들보다 더 작은 몸을 가졌다.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많은 기술들을 습득했고, 다른 사회 사람들과도 결혼하기 시작했다. 하드자베족은 바로 이 사람들에 속한다. 하드자베족은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네 단계를 거치며 진보해 왔다고 생각한다. 진보의 방향은 명확하다. 기술이 진보했고 이를 뒤따라 세상이 진보했다. 
 
  정약용(丁若鏞)도 기술의 진보를 논했다. 하드자베족이 먼 과거의 인류를 돌아보았다면 정약용은 가까운 과거의 조선을 돌아보았다. 조선이야 지리적 특성상 중국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기 유리한 곳이었지만, 실제로는 마치 시골 사람이 한번 서울의 최신 기술을 보고는 돌아와 서울 기술을 잘 안다고 큰소리치고 그후 다시 배우지 않는 상황이었다. 류큐 사람들은 중국 태학에 입학해서 중국을 배우고 일본 사람들은 중국 강남에 왕래하며 중국을 배우는데 조선은 어찌하여 중국의 최신 기술을 배우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의 기술이 중국의 풍토에 적합하나 조선의 풍토에 적합하지 않다고 반대하는 부류인데, 예를 들어 이들은 조선의 험악한 자연 환경에 중국의 수레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후대의 중국 기술이 조선에서 클래식으로 통용되는 전대의 중국 기술보다 못하다고 비판하는 부류인데, 예를 들어 이들은 중국의 서예에서 왕희지의 필법만 우수하고 그 후에 나온 필법은 이보다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환경의 제약과 고전의 권위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계속 진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술은 허술해져
 
  그런데 한가지 물음이 있다. 기술이 진보하면 정말 세상이 진보하는가? 정약용은 기술이 진보하면 부국강병도 이루어지고 복지후생도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가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어야 기술의 진보가 그대로 국가의 부강과 백성의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이 지점에서 기술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좋은 세상이 나오지 않는 원인을 성찰한 이현석(李玄錫)의 생각이 흥미롭다. 
 
  이현석은 말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항상 변란을 주고 인간은 변란을 겪으며 지혜를 키워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겪자 인간은 칡옷과 가죽옷을 만들어 입는 지혜를 발휘했다. 산이 가로막고 물이 가로막자 인간은 말을 타고 배를 타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런 식으로 지혜와 기술은 끊임없이 진보해 왔고, 그렇기에 후세의 어리석은 사람들도 오랜 옛날 성인의 지혜 정도는 다 갖추고 있다. 
 
  이렇게 기술이 진보하고 있으니 국가 경영도 진보해서 옛날 요순시절보다 훨씬 훌륭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건만 중국의 역사에서 통일제국을 수립한 진한 이후 그러한 정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것은 기술이 발달한 만큼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을 써야 하는데, 국가 최고 지도자인 임금이 안목이 없어서 합당한 사람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기술은 옛날보다 정교해지고 있는데 세상의 경영은 졸렬해지고 있고, 생업을 다스리는 기술은 최고를 다하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기술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한가? 오늘날엔 어떠한가? 최첨단의 기술 시대에 세상을 졸렬하게 경영하고 나라를 허술하게 다스리고 있지는 아니한가? 아, 정녕 세상은 진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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