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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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12.0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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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야 하는 말

▲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표현에 인색하다고들 합니다. 특히 ‘미안하다’라든지, ‘감사하다’와 같은 표현은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표현을 잘 하지 않다보니, 표현을 잘 못하게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속담에는 특별히 ‘말’과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말의 중요성, 표현의 중요성을 잘 나타낸 속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표현을 어색해 하는 경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도 종종 이러한 모습이 발견됩니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것’이라는 그 유명한 ‘러브스토리’의 대사도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ditto(동감)’라는 말을 하던 ‘사랑과 영혼(Ghost)'의 패트릭 스웨이지처럼 서양인들도 모든 표현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어르신들은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걸 말로 해야지 알아!’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은 사실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가 큽니다. 미안하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이 종종 어렵습니다.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 것조차 미안한 경우도 있습니다. 고맙다는 말로는 너무나도 부족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또한 표현을 하지 않는 데는 문화적인 배경도 있을 것입니다. 몽골에서는 식탁 아래에서 발이 부딪치면 악수를 해야 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몽골인은 없었습니다. 악수는 원래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려는 데서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 몽골에서는 내가 발을 부딪친 것이 공격의 몸짓으로 보였을까 두려워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표현이 필요한 문화도 있는 것입니다. 낯선 이와 자주 마주하게 되는 유목 민족의 경우에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도 서부 개척 시대에 표현은 무척이나 중요하였을 것입니다. 고맙다는 표현보다는 미안하다는 표현이 훨씬 중요한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어깨가 심하게 부딪치면 안 좋은 인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볍게 옷깃을 스치거나 살짝 부딪치는 것은 장터에서 흔한 일입니다. 일일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그저 먼 인연이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편하고, 쉬운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세게 부딪치거나 발을 밟았는데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이는 이상한 사람일 겁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상대방이 강해 보이면 얼른 미안하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미안하다는 표현이 금방 나오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표현은 상대적인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발화의 속도가 달라지니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꺼렸던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은 말이 많다’라는 말은 매우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또한 ‘말 많은 회사’라고 하면 큰 문제가 있는 회사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표현을 두려워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은 필요한 것이고, 적절히 사용해야 하므로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라는 속담이 나온 것입니다.

 이왕지사 해야 하는 말이라면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해야 하는 것이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더 좋은 표현을 찾으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나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처럼 헛된 말, 남들에게 기분 나쁜 말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든지,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은 모두 말의 가볍고, 끔찍한 힘을 경계하는 말일 것입니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을 때 상대편의 기분이 더 나빠진다면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할 겁니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너무 형식적이어서 상대편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내 말의 느낌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겁니다.

 정말 미안하다면 미안한 마음으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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