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 칼럼] 국가장(國家葬)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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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 칼럼] 국가장(國家葬)의 품격
  • 신성대 동문선 대표
  • 승인 2015.11.3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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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달러 무역대국의 초라한 국가장. 장례 매너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문화선진국!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故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해가 실린 운구차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 청와대)
 

역사는 기록으로 남긴다? 소통은 언어로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그 또한 상투적인 고정관념이다. 지금은 이미지의 시대다. 사진 한 장이 그 어떤 기록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꽃 한 송이, 배지 하나의 은유적인 메시지가 백 마디 말보다 더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2012년 4월, 97세를 일기로 사망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영웅 레몽 오브라크 장례식이 남긴 사진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쉿! 집중! 인격(人格) 이외 다른 일체의 물격(物格)들은 삭제되고 없다. 꽃 한 송이조차도 여기서는 방해물일 뿐이다. ‘거두절미’란 이런 데 사용하는 말이겠다. 일대일의 대면! 이보다 더 인간적일 수 없는 연출! 시간마저 정지된 듯한 절대침묵! 혼연일체! 사진을 보는 이들까지 동참하여 이쪽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진정한 소통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다. 관심있는 독자는 오브라크 장례식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조의를 표하는 유명한 사진을 찾아보기 바란다. 

 이 사진을 두고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마는, 프랑스 삼색기로 싸인 레몽 오브라크의 관이 아주 간소한 나무 상여에 놓여 드넓은 광장 땅바닥에 고적하니 놓였다. 조문객들과 관 사이는 아주 먼 거리로 떨어져 있고, 프랑스 국민을 대표하여 조의를 표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위치도 멀어 망자의 조국헌신에 대한 경외심이 그 거리만큼이나 크고 높음을 표현해내고 있다. 최고 품격의 이미지를 잡아낸 사진기자의 안목. 흡사 여백의 미를 살린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백 마디 말보다, 천 송이 꽃보다 강한 메시지 사진 한 장

 혹자는 이를 두고, 그건 그들의 전통적인 관습일 뿐, 우리는 우리대로 하면 되지 굳이 서양을 따라 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할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장례식 풍경이 유럽이나 프랑스에서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엄격한 국가의 의전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장례식 이미지는 단 한 번도 남긴 적이 없다. 바로 그것이 프랑스의 힘,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문화 창조의 역량이다. 왜 프랑스가 글로벌 매너의 중심에 서 있는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민족이 언제나 세계사를 주도해 왔다. 과연 한국에서 저런 식의 과감한 발상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있을까? 그리고 타성의 질긴 끈을 과감히 끊어내고 새롭고 낯선 그것을 수용할 배짱이 있을까? 아직까지 일제 근조리본 하나 못 떼어내면서 문화 창조? 개혁이니 진보니 하지만 그게 그렇게 거창한 것만이 아니다.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해보는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버릴 줄 알고, 바꿀 줄 아는 것이다. ‘용(勇)’이 없으면 창조도 없다. 매너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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