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겨서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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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겨서 헷갈린다
  • 정채환
  • 승인 2004.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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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4일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기각이 보도되면서 자세한 판결문을 읽을 수 있었다. 약 2달간에 걸친 탄핵에 대한 논쟁은 총선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되어 열린우리당이 원내 제 1당을 차지하는 행운도 얻었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었던 사건이라 헌재의 결정이 어떻게 나느냐는 한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헌재의 재판관들은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한다면 '공부 많이 하고 좋은 학교 나온 사람이 별 볼일 없는 촌사람에게 찾아가서....'가 아닌 고시 합격하여 오랜 기간 법조계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고 헌재는 그런 사람들 9명이 모여있는 집합체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론은 매우 논리가 정연하고 빈틈이 없게 마련이다. 일반인들은 아차! 이런 부분들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구나하는 각성을 느끼게 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문을 읽고는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말이 어려워서가 아닌 논리가 엉망이란 뜻이다. 헌재의 위대한(?) 결정에 일반인이 이렇게 말할 순 없지만 그 정도로 수준이 낮았고 간단히 표현하자면 일관성이 결여된 짜집기 수준이었다.

◎ 다들 웃기는데...
판결문에서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이 위헌과 위법적인 행위를 한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하였으며 국회의 절차도 전혀 하자가 없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선거법상의 공무원 중립의무 위반, 중앙선관위의 결정에 대한 불복, 어느 날 갑자기 나와 기자회견을 하면서 재신임을 묻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 등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재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다만 그 위헌과 위법의 정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데 그것을 헌재에서 무게를 단다는 것도 웃기는 말 아닌가? 작은 교통위반도 벌금을 내고 음주운전 정도 되면 구속도 되는데 확실한 법 위반자를 정죄한 국회의 결정을 기각한다는 것이 너무 웃기는 것이다. 차라리 「위헌과 위법사실로 볼 수가 없고 대통령은 그럴 수가 있다」라는 판결이 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가 말이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의 이런 위헌과 위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193명 중 191명의 의원들이 탄핵을 가결한 것인데 그 가결에 대한 절차가 위헌여부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내용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과연 헌재의 소관업무일까?

◎ 여당, 야당도 동시에 웃기고
그 다음 웃기는 것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를 의회쿠데타라고 규정지었고 헌재의 판결이 탄핵가결로 나온다면 이에 불복하겠다는 뜻을 비추기도 했다. 헌법과 법질서를 지켜야할 여당이 이 따위 소리를 하고 있는가 하면 야당은 한 술 더 떠서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광화문에 나온 촛불시위 집회에 겁을 먹어서일 것이다. 국회의 탄핵결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십여만명이 광화문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시위로 연일 함성을 질러대자 처음엔 좀 하다가 그만두겠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열기가 식지 않자 정치인들은 놀랬고 선거도 있고 하니 적당한 선에서 그만 꼬리를 내리고 만 것이다.
물론 국민의 소리를 듣는 자세는 옳고 바른 자세이나 양심과 소신은 더 중요한 것이다. 만약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향후 한국정치는 인터넷과 광화문의 촛불로만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선동정치의 표본이다. 때론 힘들지만 묵묵히 길을 걷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겼다는 서산대사의 선시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훗날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가 많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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