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불안한 한국의 중산층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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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안한 한국의 중산층 (상)
  • 엄인호 경제학자
  • 승인 2015.09.0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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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비정규직 확산, 인구고령화 등이 주 원인

▲ 엄인호 경제학자

  오늘날 한국의 현실은 기존의 경제질서가 무너지고, 저성장, 저수익, 저소비, 저출산, 인구 고령화, 저투자, 고실업 등 새로운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내수, 수출 동반침체와 글로벌 금융 위축으로 총체적 경제위기에 직면, 심각한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에 쌓여 직장을 통해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한국의 중산층 절반이 빈곤층 추락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세계적 컨설팅회사 메킨지(MCG)가 지난 4월 한국보고서를 통해 경고한바 있다. 
 
  현재까지 중산층에 대한 일치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음으로, 통계분석 및 여론조사 기관마다  각각 다른 측정치를 쓰고 있어 중산층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정확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중산층이 추락하는 추세다.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기준에 의하면, 중산층은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계층을 말한다. 중위소득이란 모든가구를 소득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정확히 가운데 위치한 가구를 말한다. 한국의 중위소득(4인가구 기준)은 월422만2533원 (2015년 보건복지부 발표)정도인데, 연봉으로 따지면 2467만원 ~ 7401만원을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월 211만여원만 벌어도 중산층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일반시민들과의 인식격차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5월 14~20일 동안 총33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 중산층의 최소기준은 월수입 600만원(34.3%) 에다가 30평이상 주택소유(63.4%), 그리고 년 1회 이상 해외여행(48.1%) 등 으로 OECD나 정부가 내놓은 중산층 기준과의 괴리가 확연하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1980년대 후반 전국민의 60-80%가 스스로 중산층으로 인식했다면, 2013년 한국사회학회 조사에서 그 비율은 20% 안팎으로 줄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중산층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것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한국의 중산층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빠른속도로 무너져 가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한 후, 중산층 복원을 위한 중장기적 경제정책 대안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I. 한국 중산층의 붕괴 원인분석 
 
(1) 중장년세대의 고용불안과 청년실업이 중산층 붕괴 요인
 
  중장년 세대의 고용불안이 중산층을 빈곤층으로 추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반면, 극심한 청년실업(15~29세)과 비정규직 확산은 중산층으로 진입을 가로막는 주요인이 되고 있어 중산층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언제 해고(희망퇴직, 명퇴, 조퇴, 등)될지 모르는 고용 불안정성 때문에 더이상 직장을 통해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중장년 세대의 고용불안과 청년층의 실직난은 인구대비 일자리의 절대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된다. 1996년까지만 해도 국내에 양질의 일자리가 535만개 였는데 비해 대졸 노동력은 497만명에 불과해 노동력의 공급이 수요를 채우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좋은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2010년에 이르면서 양질의 일자리 수는 581만명으로 소폭 증가한 반면 대졸노동력은 965만명에 달해 거의 400만명에 가까운 초과 인력공급이 이뤄졌다. 이 400만명 중 일부는 비정규직이나 소득이 낮은 직종에 머물면서 ‘고학력 워킹푸어’ 로 전락하게된 것이 중산층의 폭이 좁아지는 원인이다.
 
  한편 청년 실업자(15~29세)는 48만명에 육박(약10%~ 11%)하고 있고, 여기에 취업준비생과 구직 단념자까지 합치면 더많은 청년이 실업상태(청년 체감실업률 37%)에 놓여있다(통계청의 ‘2015년 2월 고용동향’). 더 큰문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60세 정년 연장을 앞두고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고려해 청년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중산층의 변화를 추적한 결과(10년간 4248가구 변화추적), 부모와 자식세대 모두 중산층을 유지한 가구는 12.7%뿐이었다. 경기침체로 구조조정 대상이되여 직장에서 밀려난 세대가 중산층으로 버티기 점점 어려워지는 가운데 자녀들마져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해도 생활이 어려워 이른바 ‘고학력 워킹 푸어’가 급증해 지난 10년간(2001-2011)부모 와 자녀세대가 안정적으로 중산층을 이뤄낸 가정은 10곳중 1곳 정도에 불과하다. 할아버지 세대는 노후 생활고(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이 48%로 OECD평균치의 약4배), 중장년 세대는 구조조정 불안, 청년세대(15~29세)는 구직난,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이 많아 중산층으로의 진입이 힘든 이유다. 요즈음 3세대가 모두 중산층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 2010년에 이르면서 양질의 일자리수는 581만명으로 소폭 증가한 반면 대졸노동력은 965만명에 달해 거의 400만명에 가까운 초과 인력공급이 이뤄졌다.

 
 
(2) 비정규직 확산 
 
  비정규직 확산이 중산층에서 추락하는 원인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고용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폭 증가해 중산층을 살린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경제활동 인구 중 32.1%인 607만명에 달하고 있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소득격차가 소득불평등의 주 원인이 되고있다. 
  전체근로자 가운데 대기업 정규직은 약10%에 불과하다. 대기업 정규직이 100의 임금을 받으면 중소기업 정규직은 53, 비정규직은 36을 받는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으로 취업하면 대졸초임이 중산층 임금 을 받게 됨으로 막바로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으나, 비정규직 확산이 젊은 세대의 중산층 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3) 인구 고령화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은 1인 가구의 증가 추세 (인구구조문제)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이탈하는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65세이상 노인비율은 2014년 기준으로 15.1% (640만6천명) 에서 2030년에는 24.3%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2045년경에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 (42.5%)가 노인층으로 구성된다는 예측이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약 48.6%로 캐나다(6.7%)의 7.3배, OECD 평균의 약 4배 이상되고 있다. 특히 2013년 기준으로 65세이상 1인 세대의 노인 빈곤율은 74.0%로, 노인 1인 가구에 집중되어 있다. 
 
 
(4) 가계부채 
 
  가계부채(약1100조원)는 중산층 추락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면, 이자 부담을 감당 못하는 가구가 속출, 중산층에서 추락할 가구가 많다는 것이다. 중산층 가구 중 55%는 대출권리금 상환부담으로 적자를 내고있는 ‘빈곤 중산층’이라고 세계적 컨설팅회사 메킨지는 진단하고 있다.
 
  대기업의 고임금 일자리가 줄어 가계소득이 늘지 않는데다가 주택구입과 관련한 대출금 상환부담이 늘고, 또한 교육비 부담도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베이비 부머(1955-63년 태생, 약729만명)의 은퇴가 2010년 부터 시작되면서 연금소득대체율이 낮은 한국에서 베이비 부머가 노후생활을 위해 연금에 기대는 대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자영업 창업에 나섬으로 가계부채율이 높아졌다.
 
  실제 전체가구에서 50대가구의 가계 부채 점유율은 최근 10년새 10%이상 상승했고, 전세금이 급등하면서 2013년 전세 자금대출이 2009년 보다 2배 가까이 상승한 것도 부채증가의 원인이다. 가계저축률은 1994년 20%에서 2012년 3%로 떨어졌고, 가계부채가 폭팔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소비부진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내수 부진의 주원인 이다. 
 
 
(5) 기술진화에 의한 구조적인 실업도 중산층 붕괴의 요인
 
  기술발전(특히 디지털혁명 이후)으로 신규 고급 일자리 창출과 고급인력(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반면 중산층 임금을 받던 수많은 일자리(사무직, 관리직, 기술직종)는 줄어들고 있다. 중산층이 고소득층으로 편입되거나 빈곤층으로 전락하면서 중산층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혁명 후, 저숙련 일자리(저학력-저임금)는 육체노동이 많아 여전히 수요가 증가하고, 고숙련 일자리는(고학력-고임금) 신기술 등장으로 오히려 수요가 늘었지만, 중산층 임금을 받던 일자리는 로봇-컴퓨터 자동화로 인력이 기계로 대폭 대체되어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 10여년 후의 나타날 노동수요를 직종 및 학력별로 그래프를 그리면, 저학력-저임금 직종의 수요는 계속 높지만 중산층 임금을 받는 일자리의 수요는 대폭 감소되고, 고숙련-고학력-고임금 일자리의 수요는 높아 ‘그릇모양’ 의 그래프로 나타난다(Oxford 대학연구결과). 중산층 임금을 받던 일자리의 대량감소 때문에 중산층이 그릇의 ‘밑바닥’으로 표시된다. 
 
  앞으로 다가올 중산층의 몰락을 의미한다. 중산층의 붕괴가 본격화되면, 소득이 없는 가정이 대폭적으로 늘어나 소득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궁극적으로 시장의 붕괴(상품, 서비스, 주택시장, 등)로 이어질 것이다.  
 
  엄인호 (전 캐나다 연방정부 국제무역위원회 수석경제학자, 전 오타와 상록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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