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변호사협회 회장 조셉 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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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변호사협회 회장 조셉 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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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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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 기자
roh@coreamedia.com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이민 1.5세와 2세들 가운데 자라면서 ‘롤 모델 (role model)’을 찾기 어려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인생의 목표와 진로 설정을 이끌어 줄 본보기가 드물었다는 얘기다. 이들의 성장기에 이민자수가 워낙 적었던데다 1세대는 기본 생존을 위해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며 일할 때였기 때문이다.
조셉 진 (47·한국명 진요섭·사진) 씨도 30년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따르고 싶은 롤 모델이 없다면 스스로 다음 세대의 롤 모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이민생활 30여년이 꿈과 좌절과 도전의 연속으로 채워진 것은 숙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현재 변호사이자 기업가로 성공의 외형을 갖췄다. 그리고 남을 위한 봉사와 사회활동을 통해 그 내면을 채우려 하고 있다.

노스 밴쿠버에 있는 그의 회사 제넥스 이노베이션스 (Xenex Innovations) 사무실에서 조셉 진 변호사를 만나 그동안 걸어온 길과 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들어봤다.
진 변호사는 경제적인 이유로 법률 조력을 받기 어려운 밴쿠버 한인들을 위해 무료 법률상담을 벌여왔다. 올해로 11년째 계속해온 봉사활동이다.
법률 상담은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 (UBC) 법대의 ‘엘슬랩 (LSLAP· Law Student Legal Advice Program)’ 을 통해 격주로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가정법, 민법, 상법 등의 분야를 상담하는 법률 클리닉이다.
소수민족 그룹의 엘슬랩으로는 중국계에 이어 두번째로 93년부터 시작됐다. 그와 황승일 변호사 등 한국계 변호사 선두주자 몇몇이 UBC 프로그램을 가져와 운영해온 것이다.
진 변호사는 그러나 “봉사는 소리없이 해야 한다”며 상담활동에 대해서는 말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BC주 한국계 변호사들의 모임인 한인변호사협회 (KCBA)가 법률상담소를 정식으로 맡아 앞으로 활기차게 운영해 나갈 것임을 다짐했다.
진 변호사는 지난해 여름 공식 출범한 변호사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를 한인 커뮤니티에 제대로 봉사하는 모임으로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새해 결심 가운데 하나다.

“10년전만 해도 한국계 변호사가 서너명에 불과했습니다. 그 사이 많이 늘어나 한국인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요즘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캐나다 법대에 들어가 변호사가 된 사람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30여명에 이르는 회원들은 검사와 법무부 직원, 로펌 소속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아직 판사가 없어 가까운 장래에 판사가 배출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한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개업중인 변호사는 10명 안팎이다. 예비 변호사인 법대 재학생도 10여명에 이른다.
진 변호사는 회원 가운데 최연장자다. 그는 한인사회 1.5~2세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든다. 그보다 더 나이가 많다면 1세대로 쳐야 한다.
대부분 1.5세와 2세로 구성된 변호사 모임이 캐나다사회와 한인사회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양쪽의 문화와 언어를 두루 아는 마지막 세대로서 절실히 느끼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한인사회에 100% 한인이 대부분이지만 2세대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도 인종간 결혼이 꽤 있는데, 이들의 2세 가운데 잘 생기고 우수한 사람들이 많아요. 이 사람들도 우리가 포용해야지요.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2세들을 배타적으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변호사를 비롯한 2세 전문인 그룹을 움직이려면 선배인 자신들이 앞장 서 끌고가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꼭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한인 양로원 건립이다.
양로원 건립은 오래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된 한인사회의 숙원사업으로 진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인 선두그룹에서 관심을 표명해왔다. 아직 구체적인 추진방안은 세워지지 않았으나 변호사협회를 동력엔진으로 삼자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그러기 위해 “협회를 조직화하고 젊고 능력있는 회원들을 데려다 일을 시킬 계획”이라고 그는 말한다.


"자라는 세대, 난관극복할 수 있는 정신자세 가져라"
공부는 언제든 할 수 있어…확실한 동기부여도 중요

캐나다 문화에 익숙하고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그가 한인 공동체에 관한 애착과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한인교회에서 성장한 덕분으로 보인다. 60~70년대 초기 이민자들이 다니던 한인연합교회가 그곳이다.
당시의 사실상 유일한 한인교회로 이민 연조 25년 이상인 가족들 대다수가 거쳐갔다. 진 변호사가 한인사회 원로 반병길 목사의 3녀인 부인 미셀 반 (45&·한국명 반성순) 씨와 어려서부터 함께 커온 곳도 이 교회다.
그가 부모 따라 처음 캐나다 땅을 밟은 것은 15살 때인 지난 71년. 노스 델타 시니어 세컨더리 스쿨 9학년에 들어갔을 때 학교에 아시안이라곤 그의 형제자매 밖에 없었다고 한다. 엔지니어 출신인 부친은 가게를 운영하며 이민생활을 꾸려나갔다.
하키와 풋볼에 흥미를 느낀 그는 운동만 실컷 하다 UBC 생화학과정에 들어갔다. 의대에 진학하라는 부모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과학에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2년만에 중도하차했다.


미국서 부동산중개업 하던중 법률지식 필요성 느껴 법조계 투신
UBC ´LSLAP´ 통해 격주로 밴쿠버 한인들에 무료 법률상담
한인 변호사협회 회장도 맡아… "한인-주류사회간 다리역할 해야"
UCLA 하키팀 부감독 역임…하키에 일가견 있는 스포츠 매니아


5년간 낭인생활을 하던 그는 밴쿠버를 떠나 캘리포니아주립대 (UCLA) 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후 LA에서 리커 스토어와 텍사코 주유소 등을 운영하다 상업용 부동산중개에 뛰어들었다. 1천만 달러짜리 대형 거래까지 다루면서 비즈니스 감각을 익힌 그는 좀더 전문적인 법률지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30대 중반에 잘나가던 직업을 버리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한 데는 부인의 격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빅토리아 대학 법대에서 증권법과 상법으로 무장한 뒤 벤처 비즈니스에 투신했다.
95년 웨스트포트 이노베이션스라는 벤쳐기업을 설립해 3년 동안 기업 파이낸싱과 인수합병 (M&A) 등을 통해 기업가치를 크게 키웠다. 이를 바탕으로 기술력을 갖춘 기업 사냥에 나서 PC 기반 레이다 첨단기술을 가진 제넥스 이노베이션스를 인수했다.
정보통신 (IT) 붐이 일던 99년 당시 1백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놓고 기업가치를 검토한 끝에 집어낸 것이다. 제넥스는 캐나다의 나스닥 격인 TSX 벤처 상장기업이다. 종업원 12명인 이 회사는 미국 국방부와 캐나다 해군 등에 레이다 이미지 기술 제품을 팔고 있다.
제넥스 인수 당시 한국의 기업도 수십 곳을 인수대상에 넣었으나 기업문화가 워낙 달라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벤처기업은 상장 (IPO) 이 최종목표가 되곤 하는데 사실 상장은 벤처사업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벤처기업도 10~15년 정도의 긴 안목을 갖고 꾸준히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돈만 좇아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기술과 장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지요.”
그가 인력관리에서 중시하는 것은 팀웍과 리더십, 경쟁 대처능력 등이다. 그는 이런 품성을 스포츠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서 배운 소중한 경험을 지금도 매일 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UCLA 하키팀 부감독을 지냈을 정도로 하키에 일가견이 있는 스포츠 매니아다. 직원을 뽑을 때도 학력보다 인성을 반영하는 팀 스포츠 경력을 중시한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신이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또 스포츠부터 강조한다.
“현대생활은 경쟁과 스트레스의 연속 아닙니까. 운동을 하면 경쟁을 즐기고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지요. 캐나다에선 몇 년 쉬더라도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 공부할 수 있습니다. 영어 빨리 배우고 학점만 좋다고 다 잘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문제는 얼마나 확실하게 동기부여가 돼 있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정신자세가 돼 있느냐 입니다.”
그는 ‘돈벌이’는 40대에서 끝내고 싶다고 한다. 기업경영 외에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주로 사회활동이다. 한국과 캐나다 이중 문화·언어 배경을 잇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변호사협회 활동은 그의 헌신도와 지도력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입력: 2004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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