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위기와 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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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위기와 찬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8.2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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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뉴스를 보면 경제 위기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생각해 보면 경제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남북한 사이도 늘 위기다. 전쟁 위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남북이 여전히 휴전 상태임을 사람들은 잊고 있지 않나 한다. 가끔은 사랑도 위기라는 말을 한다. 우리 삶 속에는 늘 위기가 한 가득이다. 

  ‘위기(危機)’라는 말 앞에서 우리는 쉽게 절망하고 ‘찬스(chance)’라는 말 앞에서 괜히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위기’에는 부정적인 느낌이 있고, ‘찬스’에는 긍정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잘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글을 쓰기에 앞서 고통과 좌절이 우리를 자라게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의 힘듦도 어렵지만 반드시 이겨내야 할 일이라는 점도 기억했으면 한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합쳐진 말이다. 그저 문제가 되는 상황이 위기는 아닌 것이다. 위기에는 항상 해결책이 있다. 위기가 지나고 나면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위험 속에 움츠리고 있으면, 두려워하고 있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이것이 기회라고 되뇌어야 한다. 그래야 놀라운 반전을 이룰 수 있다.

  ‘찬스’는 보통 좋은 기회를 의미한다. 그래서 ‘드디어 찬스를 잡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스포츠 경기 같은 경우를 보면 찬스를 살리지 못하면 곧바로 위기가 오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위기가 지나면 찬스가 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어떤 게임에서는 찬스를 살리지 못하면 벌점을 주기도 한다. 찬스가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찬스는 필연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찬스가 나타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평생 세 번의 찬스는 올 거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찬스를 살리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찬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게 나을 수 있다. 찬스 역시 위기이다. 찬스 앞에서 들뜨고, 찬스 앞에서 거만해져서는 안 된다.

  전에 ‘찬스’라는 단어를 병원에서 사용하는 것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병의 원인을 정확히 이야기하지 못할 때 의사는 ‘찬스’라고 말한다. 우연이라는 말이다. 원래 영어에서는 ‘chance’라는 단어를 우연의 의미로도 사용한다. 어떤 필연적인 이유나 원인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참으로 답답하면서 원망스러운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담배를 전혀 안 피워도 폐암에 걸리기도 한다. 유전도 아니다. 도대체 원인을 알 수 없다. 이런 인생사가 우리를 절망스럽게 한다. 답답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절망이 원망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찬스’라는 말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진다.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우연이 아닌 게 없다. 내일 일을 우리가 알 수 있는가? 우리 앞에는 늘 찬스가 있다. 겸손해져야 한다. 내 앞의 찬스가 기쁘기 바란다.

  나는 위기와 찬스라는 말 앞에서 희망도 가졌고, 절망도 느꼈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잘 안다. 고통과 절망과 좌절 앞에서 부딪쳐 우리 꼭 이겨내자. 자꾸 가슴 속에서 단어들이 아프게 떠오른다. 힘내다, 울지 않는다, 다시 시작한다. 위기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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