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과 요동치는 중국
상태바
[기고]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과 요동치는 중국
  • 이병우 총경리
  • 승인 2015.08.17 1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 나라의 현실과 과제

▲ 이병우 총경리(상양 국신광전 실업 유한공사)
  올해 들어 중국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수출과 내수 경기의 부진이 한꺼번에 닥치면서 지난 30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져 오던 고도성장의 날개가 꺾이는 모양새다. 상하이 증시는 급등과 급락을 거듭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고, 이 와중에 외국 자본의 빠른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급기야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화의 대폭적인 평가절하를 단행 했다. 자존심이 강한 중국 당국의 사정이 아주 급하다는 뜻이다. 우리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자못 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난 10여 년간 중국에 살면서 중국의 거대한 개혁과 개방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다. 수 십 년 된 보통 열차를 고속전철이 대체하는 중국 평원의 모습과 하루에도 몇 개씩 솟아나는 거대한 고층 빌딩을 매일 바라보는 일은 보는 것 자체가 숨이 차고 맥박이 뛰는 일이었다. 창문을 비닐로 막은 낡은 버스에 매달려 출퇴근을 하던 지방 도시의 인민들은 이제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었고, 어느 덧 아이들의 등하교에는 아빠가 운전하는 자가용이 제 몫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거칠게 없이 달려온 중국 경제가 여간 심상치 않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이런 현상은 당연히 중국이 겪어야하고 딛고 일어서야 하는 과정일 것이다. 사실, 본토에서 중국을 체험한 사람이 느끼는 중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많은 차이가 있다. 중국의 발전이 빠르고 신속하고 거대하고 놀랄 정도로 이어져 온 것은 맞지만, 아직도 중국의 웬만한 도시에는 지난 30년의 개방과 개혁이 몰고 온 혜택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조금 더 자세하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중국은 아직도 70년 대 식의 문화와 환경과 습관이 여전한 나라다.

  특별히 은행을 필두로 한 금융권의 낙후성은 도저히 중국을 현대사회라고 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아직도 은행에서 입출금 전표를 써서 서너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다. 관공서에 가서 업무를 보는 일은 더 곤혹스런 일이다. 그야말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이 중국의 관공서다. 쉽게 말해서 중국은 한꺼번에 덩치가 너무 커버린 어린 아이와 같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다 맞는 말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노자 도덕경에 “기자부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이란 말이 있다. “발 돋음 하는 자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큰 걸음으로 급히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풀이하면 이렇다. “으스대며 까치발로 서 본들 얼마나 오래 서 있겠으며, 거드름 피우며 팔자걸음 걸어 본들 얼마나 가겠느냐?”

  중국의 빠른 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모택동의 공이 크다는 역사적 해석이 우세하다. 등소평의 개혁 개방 정책이 지금까지 성공 할 수 있었던 원인은 다름 아닌, 모택동의 “깨끗한 청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뜻이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한 국가의 개혁과 개방 그리고 고속 성장의 큰 변화는 면면히 이어져 온 보통의 상식과 수준에서는 불가능할 수 있다. 태평양의 침체된 바닷물이 한번은 무시무시한 태풍에 의해 뒤집혀져야 새로운 생명이 힘차게 생겨나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바다의 새 생명은 주기적으로 하늘이 준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묵묵히 참고 기다리다 보면 하늘이 먹구름을 동반하고 거센 바람을 몰고 와서 태풍을 만들어 준다. 인위적으로 바다가 스스로를 바꿀 수는 없다. 천명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 중국은 거침없이 달려 왔다.

  모택동이 일으킨 태풍이 지나간 빈자리에서 13억 인민들이 새롭게 시작을 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빠르게 지나갔다. 중국은 이제 새로운 태풍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번의 태풍보다도 더 크고 힘이 있는 태풍이 필요 할 수도 있다. 작금의 중국의 여러 정황이 그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많은 중국의 전문가들이 오늘의 중국을 진단하고 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중국의 정치개혁이라는 태풍의 필요성을 말하고 싶다. 중국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중국 관료와 정치는 후진적임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겉모습은 화려하고 요란하지만 중국 관료들의 낙후성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골칫덩이다.

  지난 세월의 개혁과 개방의 선두에서 달콤한 실과는 중국 관료들이 모두 챙기고 이제 경제가 시들어가는 마당에서 일반 백성들은 먹다 남은 음료수 몇 병과 몇 잔의 빠이주(백주)나 마셔야 할런지도 모른다. 뒤늦게 시진핑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배불리 먹은 상어와 고래들은 이미 저 깊은 심연으로 다 들어가 숨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중국 정부의 고민도 아마 경제 성장의 일시적인 멈춤보다도 이런 통제되지 않는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 집단에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경제 볼륨은 이제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를 보여준다. 지방 정부의 일 년 예산이 세계의 보통 국가의 그것과 비슷해진지는 오래 전이다. 중앙 정부가 이런 지방정부를 예전처럼 통제하기는 여간 힘든 상황이 아닐 것이다. 북경과 상해만 잘 돌아가면 되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중국의 경제는 자국의 힘으로만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눈을 돌려 이제 한국을 바라보자. 우리는 올 해 광복 7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일제의 강압 통치에서 벗어난 지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다. 축복의 태풍이 하늘의 뜻으로 불어 온 것이다. 우리도 그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죽기 살기로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고단하고 지치고 힘들었던 한반도의 역사는, 그래도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몇 번의 태풍을 그 때마다 이겨내면서 슬기로운 길을 찾아서 현재에 이르렀다.

  멀게는 있어서는 안 될 동족상잔의 아픔이 있었고, 가깝게는 무능한 지도자와 멍청한 관료들 덕분에 국제적으로 구제금융에 신세를 져야 하는 기막힌 세월도 있었다. 그리고 더 가까이는 세월호의 아픔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바깥으로는 여전히 미국의 눈치를 봐야하고 일본에게는 심정적 증오가 국력을 앞서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울러 운명처럼 다가 온 중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중이다. 한반도의 현실은 아직도 분단의 슬픈 현장에서 수시로 지뢰가 폭발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 해군 참모총장은 무기 업자에게 뇌물을 받은 죄로 징역을 살고, 여당 국회의원은 대낮에 성폭행을 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어느 야당 국회의원은 줄줄이 받아먹은 금품 때문에 국회에서 제명을 받고 참회(?)의 눈물을 짜고 있는 중이다. 광복 70년을 맞이한 한국의 모습치고는 너무 처량하지 않은가?

  나는 중국과 한국에 올 하반기에 태풍이 다시 불어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태풍이 아무 때나 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과 한국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태풍이 절실한 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행히 우리 두 나라는 일찍이 노자와 장자 그리고 공자의 사상을 공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어느 민족보다도 천명이 무엇인지도 안다.

  다석 유영모 선생도 “하늘을 떠난 정치와 경제는 멸망의 길로 달려갈 뿐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제발 엄청난 태풍이 불어 왔으면 한다. 그리하여 두 나라가 다시 새로운 기운을 충전하여 상생하고 협력하는 동반자적인 관계로 제대로 발전 했으면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대안이 없다. 태풍과 새 출발 그리고 상생과 협력이 한 중 양국의 답이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