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맞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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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맞먹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8.0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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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먹는 것이 좋은 것

▲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누군가가 자신에게 대들 때나 나이 어린 사람을 귀여워해 주었더니 기어오를(?) 때 우리는 ‘맞먹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좋은 표현은 아니죠. 오히려 ‘감히 네가!’ 하는 식의 얕보는 태도가 담겨있는 말입니다. ‘맞먹다’라는 말은 ‘맞’과 ‘먹다’가 합쳐진 말인데, 마주 보고 먹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다, 맞이하다, 마주, 마중, 맞서다, 맞선, 만나다(맞나다)’ 등의 단어들이 모두 같은 어원에서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 둘 이상의 존재가 있어야 가능한 행위들인 것입니다.

  ‘맞먹다’는 말은 겸상을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어른들과 아이는 같이 겸상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높은 사람과 함께 겸상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와 겸상을 했다는 것은 자랑이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수준이 안 되는 사람이 자신과 겸상을 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언짢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맞먹으려고 하냐?’는 질책이 나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더 이상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자랑이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식사는 함께 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식탁에서 쫓아내어 혼자 먹게 한다면 그것만큼 큰 수모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집안의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 취급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제는 맞먹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다른 이유로 겸상의 시간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와 자식이 식사를 같이 하지 않습니다. 혼자 먹고 휙 떠나 버린 가족의 자리는 참 쓸쓸해 보입니다. 식탁에도 제대로 앉지 않고 선 채로 우유나 토스트를 먹고 나가는 아이들에게 같이 밥 먹는 따뜻함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저녁에도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줄어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약속으로 서로의 식사 시간은 쪼개지게 됩니다. 혼자 밥 먹는 게 가장 처량하다는 주부의 넋두리는 그냥 넋두리가 아닐 겁니다.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죠. 가족의 끈이 약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식구(食口)가 가족(家族)하고 다른 것은 밥을 같이 먹기 때문입니다. 밥을 같이 먹지 않으면 식구가 아닌 셈입니다.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밥은 집에서 먹어야 합니다. 혹시 식사를 먼저 했더라도 나중에 밥을 먹는 식구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가 늦게 와서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어머니는 주로 밥상 옆에 앉으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묻곤 하셨던 것 같습니다.

  식구끼리 대화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화가 부족하다면 밥을 같이 먹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는 서로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기껏 이야기를 하더라도 대화의 주제가 TV 속을 향하게 됩니다. 저 배우가 어떻고, 저 가수가 어떻고, 뉴스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의미는 좀 달리 쓰이고 있지만 서로 자주 맞먹었으면 합니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아이들과 학교 이야기를 하고, 친구 이야기를 하였으면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아이의 관심사와 친구 관계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야기는 해본 사람이 합니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말수가 적어지는 것은 대화의 시간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부모와 이야기하는 버릇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이겠죠. 대화는 하다 보면 늘고, 안 하다 보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자꾸 맞먹자! 그리고 더 많이 대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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