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낳아준 한국의 부모를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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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낳아준 한국의 부모를 찾고 싶습니다”
  • 시애틀N
  • 승인 2015.08.0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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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살 때 미국 입양된 김동숙 씨의 사모곡(사진=시애틀N)

  3살 때 입양된 몬태나 40대 한인여성 애타게 호소
  ‘김동숙’ 이름 적힌 사진 한 장이 유일한 단서

  미국에 3살 때 입양돼 역경을 이겨내고 이젠 입양인 돕기에 앞장서고 있는 몬태나주의40대 한인 여성이 자신을 낳아준 한국 부모를 애타게 찾고 있다.

  아무런 기억도 없고,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생부와 생모를 찾아나선 '사모곡(思母曲)'의 주인공은 몬태나주 보이즈만에 살고 있는 타라 브래드포드(46)씨이다.

  브래드포드씨는 보이즈만 시의원인 이이호씨와 민주평통 시애틀협의회 윤부원 수석부회장의 주선으로 지난 1일 시애틀을 찾아 자신의 사연을 전했다.

  그녀는 1969년 7월8일 한국에서 태어났고 3살 때인 1972년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노스다코타주의 한 백인 가정집에 입양됐다. 그녀보다 2살 위의 친 아들을 두고 있었던 양부모는 그녀를 입양한 뒤 10개월 만에 이혼, 그녀도 많은 입양아들이 겪는 힘겨운 미국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녀와 오빠를 혼자서 부양하며 힘겹게 살던 양어머니는 재혼했지만 상대 남성이 알코올 중독자여서 힘겨운 가정생활은 여전했다.

  양어머니는 2년 뒤 다시 이혼하고 혼자서 두 자녀를 키웠다. 6~7년간 혼자서 두 자녀를 기른 양어머니는 1980년 3번째 결혼을 했고 인구 800명의 노스 다코타주 톰슨에 정착해 살았다.

  브래드포드씨는 “어머니가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알코올중독자 등을 만나 어렸을 적 너무 힘들게 살았다”고 털어놨다.

  톰슨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그녀는 노스 다코타대에 진학해 심리학과 초등교육을 복수 전공하면서 현재의 남편인 타일러 브래드포드씨를 만났다.

  1993년 결혼한 뒤 남편은 의대 공부를 계속해 산부인과 전문의사가 됐고, 이들 부부는 미시간을 거쳐 1999년 몬태나주 빌링, 2005년 보이즈만으로 옮겨 생활하고 있다.

  몬태나주로 이사한 1999년 30살의 나이에 하나님을 믿게 된 이들 부부는 보이즈만으로 옮기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저니 교회’(Journey church)를 개척한 뒤 목사를 초빙했다. 창립 10주년인 된 이 교회는 현재 신도가 1,500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지인들의 모임에서 우연히 이이호씨를 만난 브래드포드씨는 7년 전부터 자신의 뿌리찾기를 시작했고, 입양에 관심을 가지면서 ‘Encompass’란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입양아 및 위탁가정에 맡겨진 아이들을 돕고 있다.

  두 아들(현재 21살과 17살)을 둔 브래드포드 부부는 이후 이디오피아에서 3형제를 입양해 사랑으로 기르고 있다.

  브래드포드씨는 “친부모를 찾으려고 홀트 아동복지회를 접촉해봤는데 내 기록이 전혀 없고 나도 아무런 기억이 없지만 나를 낳아준 엄마를 꼭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가진 유일한 ‘단서’는 입양 당시 양부모에게 전달됐던 흑백사진 한 장뿐이다. 이 사진에는 ‘Kim Dong Sook’(김동숙)이란 이름과 입양 번호(#9680), 생년월일(1969년 7월8일)만 적혀있다.

  그녀는 “김동숙이라는 이름도 당시 미국으로 입양 보낼 때 필요해서 홀트 복지회가 그냥 지어서 붙여진 것 같다”면서 “아마도 엄마가 나를 낳은 뒤 불가피한 사정으로 버렸고, 고아로 있다가 홀트를 통해 미국 가정에 입양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녀는 “비록 고아가 됐지만 미국으로 입양돼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한다”며 “힘든 가운데서도 낙태를 하지 않고 나를 낳아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먹였다.

  연락처: (206)355-2730

  시애틀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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