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대표는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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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가대표는 아무나 하나?
  • 이병우 총경리
  • 승인 2015.08.0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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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총경리(상양 국신광전 실업 유한공사)
  중국 호북성(湖北省)의 성도(省都)인 우한(武漢)은 중부 내륙의 중심 도시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치면 배꼽이라고 할 만큼 중국의 정 중앙에 위치한 덕분에 주변의 9개성과 연결되어 있어서 예로부터 구성통구(九省通衢)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북방 사람들은 우한을 남방이라고 하고 남방 사람들은 북방이라고도 합니다. 교통의 요지라는 뜻입니다. 모택동은 한 때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려고 했을 정도로 우한은 유구한 역사의 도시이며 북경과 상해보다도 대학이 더 많은 교육환경과 더불어 중국 전역을 통치하기에도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였던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 공산당 정권의 시발이 된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우한에서 최초 봉기했다는 것도 모택동에게는 나름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장강의 거대한 물결이 시내를 가로질러 흘러가면서 한강과 합류하기도 하는 지형적 특색으로 우한은 현재 상업 중심지인 한코우(汉口)와 호북성 정부가 있는 교육 중심의 우창(武昌) 그리고 공업 중심의 한양(漢陽)으로 3분화 되어 있는 인구 약 900만의 도시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 우한에 오면 공통적으로 놀라는 것이 “우한이 이렇게 큰 도시였나!”이며, 여름에 방문한 사람들은 이렇게 더운 지방에서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놀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한은 충칭, 창사, 난징과 함께 중국의 4대 화로라고 불릴 만큼 더운 곳입니다. 그냥 보통의 여름 날씨도 더운데 화로에서 여름을 보낸다고 생각해 보면 가히 그 수준을 짐작 할 수 있을 겁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일단은 에어컨을 켜야 합니다. 아니면, 밤새 켜 놓고 자야 합니다. 맑은 새벽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동네입니다. 외부에는 더운 공기와 함께 습기가 많아서 산책 그 자체가 습식 사우나가 되는 겁니다. 낮 기온이 38-40도를 넘어가는 일은 아주 다반사입니다.

  이렇게 더운 지방에서 요즘 한국 남 여 축구 국가 대표 팀이 중국을 상대로 승전보를 전해주고 있는 중입니다. 한 때 우한에서 살았던 저는 한국에서 TV로 경기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나더군요. 우선은 지금 시합을 하는 한국 선수들이 얼마나 더울까 라는 안타까움입니다. 저 더위에서 지칠 줄 모르고 뛰는 그들의 모습에서 “확실히 국가 대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200여명 남짓 되는 교민과 유학생들이 3만에 육박하는 중국 관중들 틈에 끼어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2008년에 우한에서 동아시아 여자 축구시합이 처음 개최되었을 겁니다. 저 또한 수 십 명의 엄청난(?) 교민들과 함께 땀을 연신 흘리며 필승 코리아를 외쳐보았습니다. 우한이라는 지방이 인류 역사에 생긴 것이 약 3,500년 전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3,500년 만에 한국 축구 대표 팀이 우한에서 시합을 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가 되는 셈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해외 먼 땅에서 고국의 대표 팀을 40도 더위에 죽어라 응원을 하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애국심, 국민의 도리와 의무, 책임감 등으로 보통 표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해외에 사는 교민들에게는 그 이상의 깊은 무엇이 있는 겁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진심으로 고국을 그리워하는 향수와 이방의 땅에서 당하며 살아야 했던 서러움과 울분이 저 깊은 가슴 속에 있는 겁니다. 그 걸 토해내는 겁니다. 더구나 어제의 경기처럼 통쾌하게 우리가 승리하게 되면 그 환희는 하늘을 찌르는 겁니다. 조국 대한민국을 언제 이렇게 목 놓아 불러 보겠습니까?

  수십 명의 우리 응원단이 수만 명의 상대팀 응원석을 바라보며 언제 이토록 득의양양하게 웃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지난 세월의 고단했던 삶의 찌꺼기가 강한 태풍에 잡쓰레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그렇게 쓸려가는 겁니다. 맞습니다. 국가 대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흘리는 땀과 투혼에는 국민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책임감이 함께 있는 겁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결코 교민들에게 줄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은 주고 있는 겁니다. 국가 대표의 역할이 이렇게도 막중합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요즘 어느 국회의원의 성추행 사건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습니다. 대낮에 술에 취해서 보험 설계사와 성관계를 했다는 내용입니다. 성폭행이냐 아니냐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솔직히 입에 담기도 싫습니다. 국회의원도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화덕 같은 무더위가 한창인 우한에서는 나이 어린 국가 대표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경기를 하는 중입니다. 아마도 그 국회의원도 대낮에 혼신의 힘을 쏟았을 지도 모릅니다.

  똑 같은 국민의 대표들인데 우리가 느끼는 수준은 엄청 차이가 납니다. 저는 중국과의 경기에서 뛰는 우리의 대표들을 보면서 한국 정치권의 수준이 저 국가 대표 선수들의 반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해외에 사는 교민들이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조국은 과연 수백만 해외 동포들에게 그런 자부심을 주고 있는 걸까요?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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