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12. 학교 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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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12. 학교 찾아 삼만리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8.0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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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교장선생님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나는 방학 중 교장 대행을 하다가 개학을 한 달 여 남겨두고 교장이 되었다. 교장이 되고 가장 먼저 할 일은 학교의 재계약이었다. 우리 학교는 미국 공립학교를 토요일만 빌려 쓰고 있었고 개학 한 달 전에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당시 쓰고 있던 미국학교 교장이 퇴임하고 아직 후임 교장이 발령되지 않은 관계로 계약을 못 하고 있다가 개학 3일 전에야 교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새로 온 미국학교 교장이 학교를 빌려줄 수 없다고 한다. 당장 학생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해지며 우리의 사정을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끄덕...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교장이기에 따뜻한 배려를 기대했건만, “I understand but I will do my job...” 학교가 너무 낡았기 때문에 공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도 안다. 공사는 핑계고 학교를 빌려주기 싫은 것을. 감정이 화가 나는 것도 잠시,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일단 개학을 한 주 연기한다는 비상연락을 돌리고 교육청에 갔다. 교육청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자기가 교장을 설득해주겠다고 하였다. 학교 건물 관리인도 교장의 처사가 어처구니없는지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여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요일 오후, 미국학교 교장으로부터 학교를 빌려줄 수 없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 이젠 정말 이성이 화가 났다. 교육자라는 사람이 학생을 사전 통보도 없이 교육의 장에서 쫓아내다니...

   예정된 개학일 아침, 혹시 연락을 못 받은 학생, 학교 광고를 보고 새로 오는 학생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학교에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4명의 학생이 헛걸음을 했다. 4살짜리 혼혈아 ‘Ejun’이의 파아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처음 오는 한국학교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으리라. ‘Ejun’이를 안아주며 다짐했다. 다음 주엔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를 열겠다고.

   교육청에 가서 하소연을 하였다. 하지만 학교를 빌려주는 권한은 교장에게 있기에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고, 학교 찾는데 참고하라며 맨해튼 내 공립학교 명단을 주었다. 이것을 가지고 학교 이사장님은 맨해튼 서쪽을 맡고, 나는 동쪽을 맡아 찾아다니기로 했다.
   하루 종일 다녔지만 허사였다. 토요일에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 교사들이 싫어해서 안 된다는 학교, 교장이 없어 못 만나기도 하고.... 많은 학교 중에서 우리 아이들이 토요일 반나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니... 정신이 번쩍 났다. 또 개학을 연기할 수는 없기에 궁여지책으로 미국학교 교장에게 학교를 구할 2주 동안만 사용하게 해달라는 편지를 써 보기로 했다. 나보다 미국인을 더 깊게 경험한 남편은 그들은 한 번 ‘No’면 영원히 ‘No’라고, 괜히 상처받지 말고 다른 곳을 더 열심히 알아 보라고 했지만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펜을 들었다. 말리던 남편도 보기가 애처로웠는지 작문을 도와주었고 내가 봐도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었기에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잠을 청했다.
   아침 일찍 미국학교 교장을 찾아갔으나 너무 바쁘다고 만나주지도 않는다. 비서를 통해 편지만 전해주고 다시 학교 찾아 삼만리! 오늘은 20가 아래쪽으로 잡았다. 역시 ‘No, No. No...’ 오후가 되었다. 초조해진다. 이번 주는 목요일부터 공립학교가 쉰다. 이름도 생소한 ‘Rosh Hasanah!’, 유태인 휴일(Jewish Holiday)이다. 미국에서 유태인의 힘이 큰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공립학교’까지 쉬게 할 줄이야... 그런 유태인들의 영향력에 새삼 놀라며 ‘우리 추석이나 설날에 미국 공립학교 놀 날은 언제일까?’ 생각하고 있노라니 곧 다가올 한국의 ‘추석’이 생각나 살짝 우울해졌다. 하지만 학교 찾을 시간이 채 3일도 남지 않은 내겐 향수(鄕愁)는 사치였다. 목, 금엔 학교가 문을 닫으니 교장도 건물 관리인도 못 만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걸어 다음 학교에 갔다. 건물도 새것이고 체육관도 강당도 정말 좋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같이 있어 4살부터 16살까지 있는 우리 학교에 맞게 시설도 모두 갖춰져 있다. 이번에 처음 교장이 된 36살의 젊은 교장은 또 얼마나 친절한지... 교장 부임한 지 5일 밖에 안 되니 잘 알아보고 내일까지 전화를 준다고 하며 자기 전화번호도 손수 적어준다. 동시에 이사장에게서 학교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기부금으로 $2,000을 내라고 한단다. 내가 찾은 PS40 이야기를 했다. 내일까지 기다려 보고 안 되면 $2,000 내고라도 그 학교를 가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모처럼 편한 잠자리에 들며, ‘하나님! $2,000 절약하게 해주세요...’ 기도를 청하고 곧 곤한 잠이 들었다.​
  
   그 눈물 나는 편지를 보고도 전 학교 교장에게선 ‘No’의 대답을 받았고 ‘PS40’ 교장으로부터도 안 된다는 전화가 왔다. 결국 $2,000을 내고 이사장님이 찾은 학교로 결정했다. 그런데 두 번째 날벼락이 떨어졌다. $2,000 받고 빌려준다던 교장으로부터 교사들이 너무 반대해서 빌려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를 어쩌나... 내일부터 공립학교가 문을 열지 않으므로 학교 찾을 시간도 없는데...’ 그때만큼 유태인이 원망스러운 적도 없었다.
   도리가 없었다. 다시 개학 연기! ‘Ejun’이가 생각났다. 맑고 어여뿐 그 파아란 눈이 다시 울고 있었다. 그 아이한테 이번 주엔 꼭 학교를 연다고 약속했는데. ‘Ejun’이에겐 엄마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까?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 두 번씩 실망을 준 사람들... ‘이준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나의 검은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학교도 못 찾으러 다니고 집에 있으려니 정말 불안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문득 사립학교 생각이 났다. 인터넷에 들어가 맨해튼에 있는 사립학교 리스트를 뽑았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학교가 맨해튼의 부자들이 몰려있는 East Side 60가에서 90가 사이에 분포하고 있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가는 원칙이 한 눈에 보였다.
   ‘그런데 여기는 땅값이 장난이 아닐 텐데. 이런 부자 학교에겐 우리가 내는 한 학기 렌트비는 아무 것도 아닐 텐데... 그래도 부딪쳐보자...’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워낙 건물 값이 비싼 곳이라 건물을 사기는 힘들고 대부분 그들도 렌트를 하고 있었다.
    ‘너희도 우리랑 같은 신세구나. 그러나 너희는 개학 3일 남겨놓고 쫓겨나는 일은 안 겪겠지.... 에고, 공립학교나 잘 알아보자...’

   토요일 아침, 혹시나 해서 다시 학교 앞에 나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학교를 열었어도 비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오질 못했겠구나... 오히려 잘 됐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쏟아지는 비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미국 비는 ‘쫙쫙’ 아주 매정하게 한꺼번에 쏟아 붇고 만다. 한국의 가을비는 부슬부슬 정겹게 오는데 반해. 그래서 미국인들은 냉정하고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은 가 보다. 어떨 땐 관계에 너무 끈적하게 묶여있는 한국의 문화가 불편했었는데 지금은 너무도 그립다. 정으로 보듬어 주는 그 훈훈한 문화가...

   다른 일요일과 달리 싸우러 가는 전사같이 굳은 마음을 가지고 교회로 갔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 공부할 학교 꼭 찾아주세요...’
   눈물이 주루룩, 도대체 그치질 않는다. 셋방살이하는 신세가 처량해서 인지, 냉정한 미국인들에게 맨날 ‘No’ 소리만 들은 설움이었는지, 이번 주엔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를 열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눈물로 쏟아지고 있었다. 엄마가 암으로 6개월 선고 받았을 때 이후, 하나님께 이렇게 때를 쓰며 울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외국에 산답시고 엄마 아프실 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불효녀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하나님은 엄마를 살려 주셨다. 의사도 손 놓은 엄마도 살리셨는데 그깟 학교쯤이야...

   다시 월요일,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를 찾겠다는 각오로 힘차게 맨해튼으로 향했다. 오늘은 West Side 60가 윗쪽 방향이다.
   ‘에고, 이 학교는 강당이 없네... 그럼 우리 아이들이 배운 태권도, 무용, 단소, 노래는 어디서 발표하지? 다른 데를 찾아보자.’ 그러나 역시 No, No, No... 아까 그 강당 없는 학교라도 빌려야 할 처지이다.
   “때릉, 때릉...”
   Midtown 에서 학교를 찾고 있던 이사장님으로부터 좋은 학교가 있다는 전화다. 60가에서 30가로 달려갔다. 학교가 정말 좋다. 새로 보수를 했는지 모든 것이 반짝반짝! 강당도, 카페테리아도 체육관도 정말 좋다. 그런데... 고등학교이다. 4살짜리 유아반 학생들이 앉기에는 책상도 의자도 너무 크다. 이사장님은 보조 의자를 사서 쓰자고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가 않는다. 시간은 어느새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더 찾아보기로 했다. 아까 ‘No!’한 교장이 소개시켜 준 3곳의 학교를 보러 다시 60가 West Side로 올라갔다. 이젠 이사장님하고 같이 움직였다. 학교의 보안직원(Security Guard)한테 신분증 내놓는 것도 지쳤다. 이사장님이 내놓기에 나는 그냥 들어가려고 했더니 내 것도 내놓으란다. 내 이름, 주소가 적혀진다. 맨해튼에 있는 공립학교 방문 리스트에 내 이름이 20군데도 더 올라있다. 혹 학교에서 테러라도 발생하면 ‘FBI’에게 불려가 조사받는 건 아닐까?  ‘911’ 이후 불안한 땅에 살다 보니 별 희한한 상상도 다해 본다. ‘FBI’에게 불려갈 걱정까지 하고 들어갔는데 또 ‘No’다. 이젠 동쪽 아래 끝으로 방향을 돌렸다. 택시가 하염없이 동쪽으로 간다. 시간은 이미 3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우리가 갖고 있는 명단에서 가능한 학교는 2군데만이 남아 있었다...
  건물관리인이 자기는 교장만 좋다고 하면 ‘OK’라며 우리를 교장에게 안내해 주었다. 하교하는 학생들을 하나씩 안아주는 다정한 교장의 모습을 보며 뭔가 좋은 예감이 들었다.
  “OK !!!”
 
   드디어 학교를 빌렸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와 한참 동안 학교를 바라보았다. ‘PS61’, 마치 성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이젠 쫓겨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를 단순히 학교를 빌려 쓰는 사람이 아닌, 같이 사용하는 가족 같은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하는데... 한국음식을 차려놓고, 한복을 입고, 우리 문화를 소개하며 잔치를 할까? 아님 바자회를 열까? 아님... 이그,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학부모에게 학교 이전을 알리는 편지와 약도를 보내고, 이삿짐센터에 전화부터 하자... 신문에 광고도 다시 내야지...’
   내 머리는 다시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건물에서 보다 안정되게 후세 교육에 전념할 그 날을 꿈꾸며... 

  ※ 참고 
  뉴욕의 공립학교를 빌리기 위해선 일단 건물 관리인(custodian)을 만나고 그 다음 학교장의 최종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학교를 빌려주는 권한은 교장에게 있으나, 우리가 내는 임차료는 교육청 예산에 들어가 교육청에서 관리합니다. 그리고 학교에는 임차료의 10%도 안 되는 금액을 보조할 뿐입니다. 결국 학교를 빌려 주고 받는 스트레스나 불편함에 비해 학교나 교장, 교사, 학생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너무 적다 보니 학교 빌려주기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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