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물은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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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물은 셀프?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7.2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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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물이 영어로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물이 영어로 ‘셀프’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셀프’라는 말이 그만큼 가까이 들어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셀프서비스’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제는 ‘서비스’라는 말도 없어지고, ‘셀프’만 남게 되었다. ‘셀프’는 직접 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렇게 어휘의 일부분만으로 새로운 단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아침 식사’를 ‘아침’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제일 황당한 것은 ‘스테인리스 그릇’을 ‘스텐(스뎅) 그릇’이라고 하는 경우다. 원래 녹이 슬지 않는 그릇이라는 의미인데, 녹이 스는 그릇이라는 정반대의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온통 셀프 세상이다. 물만 셀프가 아니다. 음식을 먹고 그릇은 반납해야 한다. 자동차 주유도 셀프가 생기고 있다. 이제 어디 가면 혹시 셀프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자꾸 ‘셀프인가요?’하고 묻게 된다. 그릇을 반납하러 가다가 ‘그냥 두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고맙다. 반대로 ‘물 한 잔 주세요!’ 했다가 ‘셀프예요.’라는 말을 들으면 머쓱해진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특히 종업원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한다는 점에서 셀프는 ‘인권적’인 단어로도 느껴진다. 또한 셀프서비스가 주로 선진국에서 들어온 문화라는 점에서 왠지 셀프는 ‘선진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 ‘셀프’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고 ‘문화’이다. 여러 가지 관점이 필요한 문화이기도 하다. 따라서 셀프 문화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셀프 문화가 과연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 셀프 문화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나는 셀프서비스가 되면 종업원이 편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셀프서비스가 생겨도 종업원은 별로 편해 보이지 않는다. 패스트푸드점에 가 보라. 셀프 문화가 생겨서 종업원들의 쉬는 시간이 많아졌는지 보면 답은 아닌 경우가 많다. 오히려 더 바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셀프 문화와 노동자와는 큰 관계가 없다. 셀프서비스가 많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설적으로 셀프서비스가 도입되면서 오히려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손님이 대신 일을 해주니 종업원이 필요 없어진 거다. 우리의 예상과는 완전히 반대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셀프가 법으로 금지된 지역도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셀프 주유소가 금지되어 있다. 주유를 셀프로 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약간의 가격 상승이 있을 수 있다. 그 부분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도와야 한다. 일자리 늘리기라는 입장에서 보면 셀프서비스 없애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듯싶다. 셀프서비스가 없어지면 수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을 귀하게 생각하는 풍조도 더해졌으면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경제학의 원리와 맞지 않는 것일 수 있겠다. 나는 셀프는 강요가 아니라 손님의 ‘자발적인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님이 바쁜 종업원을 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건 좋은 일이다.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하지만 효용성이나 원가 절감이라는 이유 등으로 셀프서비스를 만들고, 종업원을 줄여나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셀프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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