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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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7.2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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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과 감정의 고통

▲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복잡한 일이 있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무언가 꼬여있는 일을 대하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픕니다. 심한 경우에는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는 말도 합니다. 시험문제를 앞에 두고 있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문제들은 머리로 풀어야 하나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는 ‘이성’의 상징처럼 되어 있을 겁니다. 냉철한 이성은 머리에서 나옵니다. 머리가 좋다는 말에는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죠.

  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떠나가거나 불쌍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가슴이 아픕니다. 만약 불쌍한 이를 보고 머리가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도 가난을 해결해 줘야 하는 정치인이나 관리가 아닐까요? 사랑을 하면서 머리가 아픈 경우는 양다리를 걸쳤거나 돈이나 지위를 먼저 생각할 때가 아닐까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은 심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합니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저절로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다른 이의 고통을 보면 저절로 가슴이 아려 옵니다. 이것은 자동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입니다. ‘가슴’은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이기에 ‘따뜻함’의 상징이 됩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생각을 옮기는 것이 참 어렵다는 어떤 분의 말씀이 뜻 깊게 다가옵니다. 가슴에서 다리로 옮겨오는 것은 더 어렵다는 말을 그 때 그 분은 덧붙였습니다. 이성과 감성, 그리고 행동의 차이를 보여주는 귀한 비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머리의 힘보다는 가슴의 힘을 믿습니다. 머리는 거짓을 행할 수 있지만, 가슴은 거짓을 행할 수 없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척 있어도 가슴이 떨려 옴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요? 잘못한 일은 스스로 생각해 봐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고, 죄책감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뻔히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것은 다 머리로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머리가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머리의 판단을 믿지 말고 내 가슴이라는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면 가슴이 아파 올 것입니다. 저는 가슴이 아파야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배가 아픈 것은 질투와도 관련이 되나 봅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거나 하면 배가 아픈 경우가 있습니다. ‘배알이 꼬인다’, ‘장이 뒤틀린다’라는 표현도 쓰는데 아마도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다른 이가 이루었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장을 경직시키는 듯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배가 아픈 것’은 별로 아름다운 아픔은 아닙니다.

  아픈 일에는 치료의 방법도 있어야 할 겁니다. 머리가 아픈 것은 그 일이 해결 되면 그야말로 씻은 듯이 낫게 됩니다. 문제가 풀렸을 때의 기분을 생각해 보면 알 것입니다. 가슴이 아픈 것은 해결이 좀 어렵습니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고, 어떤 경우에는 부끄러운 일을 회개하거나 속죄하는 행동을 해야 해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말 ‘아프다’와 관련된 표현들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겁니다. 새삼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결심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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