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집밥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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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집밥의 원조
  • 이병우 총경리
  • 승인 2015.07.2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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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총경리(상양 국신광전 실업 유한공사)
  한국의 여름은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주부터 8월 첫째 주가 휴가의 절정기가 될 듯합니다. 10여 년 만에 중국에서 살다가 돌아 온 제게는 기대되고 설레는 시간입니다. 푸른 벌판과 파도가 일렁이는 동해안의 해변 그리고 강원도 인제와 영월의 맑고 깊은 골짜기 냇물은 이방의 땅에서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추억의 풍경입니다. 어린 자식들을 태우고 강원도 홍천을 지나 인제와 영월을 거쳐서 대관령 고개를 넘어가던 그 여름날의 시골 길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따듯한 품속 같았고 길거리에서 사 먹던 옥수수와 참외는 어린 시절의 낭만을 불러주던 달고 맛있는 추억이었던 겁니다. 한참을 가다가 배가 고프면 길옆의 냇가에서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펼쳐 놓고 먹기도 했지요. 김밥과 김치 그리고 오이무침과 고추장과 상추의 조합은 집에서 먹던 그대로인데도 정말로 다른 맛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뭐래도 어머니가 시골집에서 대충 차려주셨던 집밥의 별미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의 분위기가 그런 맛의 향기를 높여준 겁니다. 툇마루 근처의 미루나무에서는 매미가 울고 가까운 뒷동산에서는 뻐꾸기가 울었던 겁니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벌써 봉숭아꽃이 피기 시작했고 울타리 뒤로 흘렀던 작은 도랑에는 개구리가 말 없는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던 겁니다. 그런 한가로운 어느 여름날에 마루에 앉아서 식구들과 함께 상추쌈에 고추장을 듬뿍 발라 입안 가득히 집어넣었던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에서는 “집밥 백선생”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아주 인기리에 방영 중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소박하고 그러나 아주 먹음직스런 요리가 어려운 설명도 없이 쉽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누구나 따라 해도 가능할 정도로 모든 요리의 순서와 재료와 방법이 쉽다는 겁니다. 저도 백 선생이 가르쳐준 된장찌개를 해 보았습니다. 맛있더군요. 그러나 우리가 백 선생 요리를 통해서 내심으로 나름 공감을 느끼는 이유는 요리의 맛이 아닐 겁니다.
 
  중ㆍ장년의 경우는 아마도 그 집 밥이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고향의 맛과 어머니가 해 주던 시골 밥의 이미지를 상상했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우리 어머니들의 손맛은 모두 일품이었습니다. 시골 채소밭에서 대충 이것저것 따고 뽑아다가 엉성한 부엌에서 해 주시던 여러 반찬은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시대가 발전하여 많은 종류의 향료와 재료와 불 조절이 마음대로 되는 주방 시설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그 것이 제대로 된 진정한 집밥의 원조일지도 모릅니다.
 
  순두부 원조, 순댓국 원조 등 지금도 우리는 가는 곳마다 진짜 원조라는 간판을 많이 봅니다. 이제는 그 원조 간판으로는 홍보의 효과가 없는지 너도 나도 “TV에 방영된 곳”이라는 보조 간판이 옆에 붙어야 합니다. 웬만한 집은 TV에 방영된 곳입니다. 이러다 보니 심지어 “우리 집은 TV에 안 나온 집”이라는 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들이 해 주시던 집 밥은 TV에 나온 적도 없고 간판도 없었던 전국 삼천리강산에 있었던 유명한 집밥의 원조였음이 틀림없습니다.
 
  돈을 많이 쓰고 거창한 계획을 갖고 떠나야 제대로 된 여름휴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만 원짜리 음식이 있으면 10만 원짜리 음식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가격이 높다고 맛이 비례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밭에서 금방 따 온 옥수수를 솥에 넣고 찌면 수백만 원의 가치가 나는 맛을 줄 수도 있습니다. 비싼 호텔의 창가에서 바라보는 해변도 아름답지만 한적한 시골의 어느 민박 집 마루에서 오이지를 썰어서 고추장과 함께 큰 양푼에 비벼 먹는 맛은 기가 막힐지도 모릅니다. 강아지는 마루 밑에서 턱을 괴고 있고 멀리 서산에는 뜨거웠던 태양이 붉은 노을을 그리며 넘어가고 있을 겁니다. 정신과 영혼이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그래서 마냥 행복한 순간을 느낄 수 있다면 휴가의 본전은 제대로 뽑는 겁니다. 부디 이번 여름 휴가는 그런 휴가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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