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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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7.1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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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한국인들은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가능하면 좋게 해석하려고 한다. 우리말을 들여다보면 그런 태도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액땜’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분명히 안 좋은 일인데도 더 나쁜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 생긴 일이라고 서로를 위로한다. 참으로 긍정적인 민족이다. 무조건 액땜이라고 생각하면 나쁜 일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예방주사의 역할을 하는 거다. 내가 지금 아픈 것도, 내가 지금 실패한 것도 다 건강과 더 큰 성공을 위해서 생긴 일이다. 맞는 말이다. 이 아픔과 실패를 교훈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단순히 재수 없는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간극은 한없이 넓다.
 
  사고가 났을 때 병문안을 온 사람이 ‘그만하기 다행’이라는 말을 한다. 다행이라는 말은 행운이라는 뜻인데 사고가 난 사람에게 행운이라니 어색한 표현처럼 보인다.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현 상태에 만족하라는 말이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사고로 죽다가 살아난 사람에게 ‘다행’이라는 말은 좀 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말 속에서 우리의 진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더 다치지 않아서 고맙고, 너무 심하지 않아서 고맙고,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이렇게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이 아닌가.
 
  아픈 사람에게는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을 한다. 사람들은 엎어졌을 때 쉽게 좌절한다. 빨리 뛰어가야 앞 사람을 잡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아쉬워한다. 땅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넘어졌을 때조차 아쉬워하지 말고 쉬었다 가라고 우리말은 충고하고 있다. 아픈 거야 어쩔 수 없으니 이때 쉬면서 몸을 보충하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가 아픈 것은 그동안 쉬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병은 쉼 없이 달려온 인생에 주의를 주는 신호등 역할을 한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꼭 의사들은 요즘 바빴냐고 묻는다. 피곤한 일이 많았냐고 묻는다. 신경 쓸 일이 많았냐는 질문도 덧붙인다. 당연한 질문처럼 여겨지지만 맞는 질문이기도 하다. 삶의 리듬이 깨어지면 병이 난다. 이럴 때는 쉬어야 한다.
 
  병에 대한 의사의 해결책도 단순하다. 좀 쉬란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란다. 많은 병이 면역 결핍에서 비롯된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곧 병으로 이어진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달려가면 면역력이 약해진다. 이럴 때는 쉬는 게 약이다. 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는 게 약이다. 그래서인지 아프면 가족 생각이 많이 난다. 부모님 생각이 나고 아내나 남편이 생각나고, 자식들이 생각난다. 그래서 혼자 타지에 있을 때 아프면 더욱 서럽다. 쉬지 않으면 정말 큰 일이 날 수도 있다. 우리 몸은 여러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종종은 아픈 게 고맙다.
 
  우리말 속에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있다. 긍정의 힘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강요하는 말투도 아니다.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말들을 살펴보면 삶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무엇이든 불만스러워 해서는 살 수가 없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 하는 불평으로는 병을 이겨낼 수 없다. 누구한테나 일어나는 일이고, 나에게 더 큰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보여주는 신호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힘들수록 쉬어 가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엎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 삶을 다시 되돌아보라. 어차피 엎어진 사람은 일어날 일만 남아있지 않은가.
 
  최근 한동안 좀 바빴다. 몸에서 금방 신호가 왔다. 전보다는 신호가 길게 나타났고 강했다. 며칠 간 몸이 좋지 않았다. 왠지 깊이 가라앉는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들려온 표현이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였다.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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