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빠리의 추모 촛불
상태바
꺼지지 않는 빠리의 추모 촛불
  • 오니바
  • 승인 2003.01.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해에도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두 여중생에 대한 추모와 소파개정 및 평화를 촉구하는 재불한인들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월 25일 빠리 마들렌 광장에서 올해 처음 밝혀진 촛불은 스무 개 남짓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이 날 광장에 모여 촛불을 나누어 든 교민과 학생들은 두 여중생의 영정을 한쪽에 세우고 "Stop the war"라는 구호아래에 즉석에서 성조기를 그려 내걸었다. 참가자 몇몇은 준비해온 피켓을 광장 주변에 붙이고, 지나는 행인들에게 사건의 개요와 소파 문제를 담은 전단을 나누어주었다.

적은 인원과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로 촛불행사는 대체로 차분하고 간략하게 진행되었다. 빠띠뇰교회 김태환 목사의 진행으로 '아침이슬'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는 것을 시작으로 원불교 교무의 미군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의 기도문 낭독에 이어 다함께 묵념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7일을 시작으로 빠리에서 네 번째로 벌어진 이번 촛불행사에는 12월 21일 두 번째 시위에 100여명이 참가한 이래 촛불의 수가 급격히 줄어있었다. 이는 광화문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었을까? 시위가 열릴 때마다 참가인원 만 단위를 자랑하며 지난 연말을 뜨겁게 달구었던 광화문 촛불시위도 25일에는 참가자가 2천 5백 여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30일 인터넷을 통한 '앙마'(김기보씨)의 제안으로 처음 시작된 광화문 촛불시위는 그 규모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매주 수 만 명을 동원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 핵심에는 주로 자주와 반미를 주장하는 범대위와 추모에서 출발해 반전과 평화운동으로 이어가려 한 '앙마'로 대표되는 흐름간의 노선갈등이 있었다. 결국 1월 4일부터는 이 두 흐름이 따로 집회를 갖기 시작했고, 정치권과 보수언론의 공세 및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보수기독교단체들의 기도회 등 외부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점차 광장에 모여든 촛불의 수가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빠리의 촛불은 광화문에서와 달리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흐름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날 보여진 피켓, 전단, 노래, 구호, 발언내용 등으로 볼 때 추모, 소파개정, 반미, 반전, 평화, 통일 등 다양한 주장과 시각이 별다른 갈등 없이 공존하고 있었다. 광화문의 촛불이 범대위와 '앙마'로 대표되는 노선갈등과 정치적 주변 여건으로 인해 약해진 반면 빠리의 촛불은 그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의 촛불이 급속하게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인터넷망을 통해 광범위하게 형성된 '네티즌'과 함께,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단체들이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불한인들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정보교류가 상대적으로 폭이 좁고 느릴 뿐 아니라 무엇보다 구심점이 되어 행사를 준비하고 홍보하는 '조직'이 없었다는 점이 우선 지적될 수 있다.

이날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에서도 행사준비와 홍보문제 등이 주로 거론되면서, 체계적인 준비 및 홍보, 집회 프로그램 마련 등을 주관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결국 31일로 예정된 한인회 신년하례회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여 다른 교민들과 함께 논의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지금까지 재불한인을 대표하는 한인회가 촛불시위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동안 촛불시위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참가한 교민, 학생을 포함해 한인회, 각 종교단체, 유학생회와 각분야 학회, 청년작가회 등을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뜻 있는 교민과 학생들이 대표로 모여 '대책위'와 같은 새로운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촛불을 다시 재정비할 필요성이 제기된 현재의 시점에서 한가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전시위와의 연대를 모색하는 일이다. 광화문의 촛불시위가 유럽언론들에게 민족주의적인 운동으로 비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주장은 고립되기 쉽고 소파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반향을 얻기도 힘들다. 또한 희생된 여중생에 대한 추모와 재판결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다. 광장에 모인 촛불이 희생된 미선이와 효순이를 살려낼 수 없고, 한국인들의 촛불만으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상대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전세계 평화주의자들과 함께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저지른 만행을 규탄하면서 더 이상 또 다른 미선이와 효순이를 만들지 못하도록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목전의 전쟁을 막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5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벌어진 반전시위에 한인동포들이 두 여중생의 영정과 미군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평화행진에 합류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