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지음(知音)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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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지음(知音)과 읽음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6.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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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지음(知音)’이라고 했던가? ‘지음’은 고사성어(故事成語)에 나오는 단어로 ‘백아’라는 사람이 자신의 거문고 소리만 듣고도 어떤 생각을 하며 타는지를 알았던 친구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나오는 단어다. 소리를 안다는 뜻인 ‘지음’은 자신을 알아주는 벗을 가리키는 말이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황망하게 시사일본어사의 엄호열 회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생각난 단어가 ‘지음’이었다.
 
  작년에 갑자기 긴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엄 회장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내용이었다. 재외동포신문에 실린 글을 보고, 내 책 ‘토닥이다’를 읽고 있는데 내용에 감명을 받았다는 말이 함께 있었다. 기쁘면서도 왠지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나보다 세상 경험이 훨씬 많으신 분이 내 글을 읽고 나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주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으로 회사의 사무실로 찾아뵈었다.
 
  엄 회장님께서는 문자를 직접 보내기 어려워 직원을 통해서 보내셨다고 겸연쩍어 하셨다. 그 후 세 번 정도 더 만났다. 만날 때마다 나이가 적은 나를 극히 존중하여 주셨고, 내 글을 좋아해 주셨다. 내 글을 일본에 출판하여 알리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다. 나는 그 때까지도 엄 회장님이 한글과 한국어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신 줄 알지 못하였다. 나 역시 몇 권의 한국어 교재를 시사일본어사에서 출판하였지만 그저 사업의 일환으로 한글과 한국어에 관심이 많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만날수록 한글과 세종대왕에 대한 관심이 진정으로 깊으심을 알 수 있었다.
 
  지난 3월에 엄 회장님은 일본에 출장을 다녀오신 후 나를 찾아오시겠노라고 전화를 주셨다. 드디어 내 책을 낼 일본 출판사를 찾았다며 기뻐하셨다. 그런데 약간은 난처한 표정도 있으셨다. 처음부터 일본어로 번역하여 전체 일본 독자를 상대하는 것보다 일단 한국어로 내고 일본어로 해설과 각주를 달아서 한국어에 애정이 있는 독자를 먼저 만나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이셨다. 그 말씀도 매우 조심스러우셨다. 왜냐하면 나는 가능하면 일본어로 번역하여 불특정한 일본인 독자를 만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씀드렸다. 그것은 내 글에 대한 엄 회장님의 애정을 깊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얼마 후 연락이 끊어졌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답이 오지 않았고, 심지어는 ‘읽음’으로도 표기되지 않았다. 그 후 학술대회 자리에서 시사일본어사 한국어 담당 선생님들께 엄 회장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무래도 일본 출장과 여러 만남으로 피곤하셨던 것 같다는 말이 이어졌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퇴원하시면 찾아뵙고, 이제는 무리하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리리라 다짐했다. 그러던 중에 계속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에 부고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왜 이렇게 오래 병원에 계시느냐고 투정이라도 부려야지 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나를 알아주시던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나를 극히 존중해 주시던 분이 이제 안 계신다. 거문고 줄을 끊듯 붓을 꺾을 것인가? 허망했다. 한참이 지난 후 어느 날 아침 나는 엄 회장님께 읽지 않을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어디에서든 늘 평안하시기 기원합니다.’라고. 더 좋은 글을 쓰겠다는 다짐과 함께 ……. 내 글을 어디에 계시든 읽으시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며칠 후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읽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가 정리하여서 생긴 일이겠지만 나는 왠지 엄 회장님이 읽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불편하신 몸으로 주차장까지 내려 오셔서 지나가는 차들을 막으시며 배웅하시던 환한 미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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