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소리] 우리 유치원, 저희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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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소리] 우리 유치원, 저희 대학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5.06.2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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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소음은 현대인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생활 공해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모여 떠들어도 소음이 발생한다. 그러나 유치원 어린이들이 재잘대는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괴롭지 않다. 특히 ‘우리 유치원’을 힘차게 부르며 행진하는 모습을 보면  ‘어미닭 따라 다니는 노랑병아리들’이 연상되어 절로 미소가 나온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저희 유치원’이라고 하지 않고 꼭 ‘우리 유치원’이라고 한다. 선생님들이 잘 가르치신 탓이겠다. 반면에 어른들은 많은 경우 ‘저희’를 남발한다. 저희 대학, 저희 회사, 저희 마을, 저희 교회... 끝이 없다. 너무들 겸손하고자 애쓰는 눈치다.

  전에는 방송국 진행자 입에서도 ‘저희 나라’ 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이제는 사회적 공론화과정을 거쳐 ‘우리나라’로 정착되었다. 기독교에는 ‘주기도문’이 있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하는 10줄 기도문에 ‘우리’가 여섯 번이나 등장한다. 높으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도 우리를 가리켜 ‘저희’라고 하지 않아서 참 좋다.

  ‘우리’와 ‘저희’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 자신에 관하여는 ‘저는’, 또는 ‘제가’라고 하는 것이 겸손하고 좋아 보인다. 그런데 크거나 작거나 공동체에 관하여는 ‘우리’가 옳고 좋아 보인다. 우리 집이 아무리 작아도 ‘저희 집’ 보다는 ‘우리 집’이 맞다. 우리 회사가 아무리 작아도 ‘저희 회사’ 보다는 ‘우리 회사’다.

  커다란 대학에서 총장이나 교수가 ‘저희 대학’이라고 말하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저희 교육과학부’나 ‘저희 맹호부대’도 듣기에 거북하다. 우리 대학, 우리 교육과학부, 우리 맹호부대가 나은 것 같다.

  ‘우리’와 ‘저희’가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정말 다른 것이 있다. ‘저희들은요...’ 이렇게 말하노라면 듣는 상대방은 우리와 확연히 구분되는 대척점에 있게 된다. ‘저희’가 겸손한 것은 분명한데 듣는 상대를 ‘우리’공동체 바깥으로 밀어내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요...’ 이렇게 말하면 듣는 상대방도 우리 중에 하나이거나 그 옆에서 들을 수 있다. ‘우리’라는 단어가 갖는 힘이다. 공동체를 느끼게 하고 공동체의식을 일깨운다. 심지어 ‘우리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 한없이 높고 머나먼 당신이 아닌 가까운 우리 아버지로 느껴진다. 우리 공동체 안에 계신 것이다.

  크고 작은 공동체를 말할 때 ‘저희’라고 낮추어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공동체에게는 개인의 경우보다 더 존중되어야 할 ‘존엄성’이 있다. 왜냐하면 여러 개인들의 ‘삶이 담기는 그릇’이 바로 우리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우리 집, 우리 유치원, 우리 합창단, 우리 교회, 우리 회사, 우리 한인회가 좋은 표현이다. 

    2015년 6월 25일 이형모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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