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성인(成人)과 대인(大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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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성인(成人)과 대인(大人)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6.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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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된, 더 아픈 사람 

▲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극장이나 공원 매표소에서 표를 끊을 때마다 무심코 지나가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성인’과 ‘대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저도 늘 별 생각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성인과 청소년의 구별을 보면서 나는 성인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인과 소인의 구별을 보면서 나는 대인인가 하는 생각에 한참을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성인이라는 단어에는 왠지 거리낌도 있죠. 성인영화니 성인물이니 하는 단어 속에서 고상함을 찾기는 어렵겠죠. 물론 성인이나 대인은 ‘나이’의 구별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성인이 되고, 대인이 됩니다. 하지만 두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인(成人)이라는 한자 단어의 의미를 풀어 보면 사람을 이루었다는 것이니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말에서도 ‘사람이 되었다’라는 말은 큰 칭찬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처럼, 혹은 짐승만도 못하게 살면 성인이 아닙니다.

  대인(大人)이라는 말은 어떠한가요? ‘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부터 소인(小人)의 반대로 ‘군자(君子)’라는 단어를 썼으니 대인은 군자라는 말도 될 겁니다. 불교에서는 대아(大我)와 소아(小我)라는 말도 합니다. 둘 다 ‘나’라는 의미이지만 둘의 경지는 전혀 다릅니다. 나를 버린 나, 나와 남의 구별이 없는 ‘나’가 진정한 ‘나’, 대아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고통에서 해탈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아의 경지에서 하는 이야기일 겁니다. 소아 때 느끼는 고통과는 다른 고통이겠지만 어찌 대아에게 고통이 없겠습니까? 오히려 진정한 대아라면 고통이 더 많아야 정상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 헐벗고, 굶주리고, 아프고, 상처받은 이들 중에 ‘나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그 고통을 들어주고 그 고통에서 건져 주고 싶은데 어찌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또한 대아는 더 기쁜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의 기쁜 일이나 행복한 일이 다 내 모습이라면 기쁨과 행복의 깊이도 가늠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드라마 ‘다모’의 유명한 대사는 사랑하는 이의 아픔이 그대로 나의 아픔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자식의 아픔은 나의 아픔보다도 더 크게 다가옵니다. 대인, 깨친 이는 만물, 만인에 대해 어머니의 마음을 갖습니다. 당연히 대인은 소인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진 사람입니다. ‘난 대인이니까 괜찮아!’ ‘나는 그 정도는 초월했어’하며 초연한 모습을 보이는 이는 제가 볼 때 ‘대인’이 아닙니다. 삶과 죽음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하찮게 바라보는 이들은 대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매듭을 풀어주기 위해서 고통을 함께 느끼는 이가 대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쯤 되면 성인과 대인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나이를 먹어도 성인이나 대인이 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 아닙니다. 성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대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두 단어를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을 생각해 봅니다. 매표소 앞에 서서 ‘대인’의 표를 사며,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대인인가?’ 여전히 소인배처럼 살아가는 모습에서 하루를 반성으로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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