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6. 니가 엄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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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6. 니가 엄마한테...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6.2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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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어제 농구 놀았어요(play).”

  “한복 샀어요. 다음 주에 입어요. 나는 못 기다리겠어요.(I can’t wait)
  “내 엄마(my mother)하고 백화점에 갔어요.”
 
  영어를 쓰는 아이들이 한국어로 일기를 쓰거나 말할 때 자주 이렇게 표현한다.
 
  “농구를 했어요 / 빨리 입고 싶어요 / 엄마랑 백화점에 갔어요”로 쓰면 더 자연스런 표현이 되겠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쓰는 영어 표현을 한국어로 직역하여 사용하다 보니 어딘가 어색한 표현이 되는 거다. 그런 표현을 접할 때 마다 한 편의 개그로 만들어도 좋겠다 싶을 만큼 우습기도 하다.
 
  한국어와 영어는 너무 상이한 언어이다 보니 학생들이 표현하고 말하는 데 더욱 힘이 든다. 게다가 그들이 한국어를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라 느끼는 것은 존댓말 표현 때문이다. 반말 존댓말도 어려운데 격식체와 비격식체의 구분은 또 어떤가?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 "맞습니다”, “맞아요"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등. 게다가 교재에선 “갑니다, 먹습니다, 잡니다”인 격식체로 배우고, 말은 “가요, 먹어요, 자요” 이렇게 비격식체로 하니 아이들 머리가 무척 복잡할 거다. 부모님들은 자녀가 한국말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기하여 반말이든 존댓말이든 상관없이 환호(?)하지만 학교에선 존댓말을 잡아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보니 아이가 말을 잘한다고 무조건 환호할 수만도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존댓말을 강조하다 보면 “갑니다요”, “옵니다요”, “먹습니다요” 이렇게 과잉 충성하는 아이들까지 나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유난히 존댓말을 힘겨워 하는 학생 중에 8살 선호가 있었다. 선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와 여동생, 이렇게 셋이 산다.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는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시고, 선호는 방과 후에는 한인 교회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한국어를 제법 하지만 존댓말을 쓸 기회가 전혀 없게 되어 어느새 선호의 한국어는 반말에만 익숙해졌다. 선호와 함께 한국학교에 다니는 여동생 선희도 마찬가지다. 유난히 어여쁜 5살짜리 꼬마가 “배고파.”, “나 이거 먹고 싶어.” “지금 어디가?” 하고 말을 건네면 유아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까지 합세하여 나의 마음이 녹아든다. 그럴 때면 존댓말로 고쳐주어야 하는 이성은 사라지고 꼬옥 안아주고 싶은 생각만 드니 어려서부터 존댓말 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어쨌든 어려서부터 제대로 존댓말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반말이 굳어지고, 자라면서 고치기는 더욱 힘들어 지기에 처음부터 존댓말을 잡아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선호도 어려서부터 그렇게 굳어진 반말을 고쳐주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님께 부탁을 해보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고, 피곤한 어머님이 존댓말 교육을 시키기란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국학교에 와서 대화할 때 바로잡아 주곤 하지만 학교에 있을 때뿐이고, 일주일 후 학교에 오면 다시 반말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선생님, 선호가 토요일에 학교에서 하는 과학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다음 주부터 5주간 한국학교를 못 오게 될 것 같아요. 어쩌죠?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좋은 방법 없을까요?”
 
  일주일에 한 번 운영되는 한국학교에서 5주 수업을 빠지는 것은 치명적인 데다가 무엇보다 존댓말을 사용할 기회가 없어지니 더욱 걱정이다. 어머님과 상의 끝에 매주 한국학교 수업 자료 및 숙제 등을 보내고, 그것을 집에서 한 후 동생 편에 보내 검사를 받는 식으로 한국어 공부를 보충하기로 하였다.
 
  선호가 한국학교에 나오지 못 한 첫째 주, 처음부터 교사가 신경 쓰고 채근을 해야 할 것 같아 선호에게 전화를 하였다.
 
  “선호야. 잘 있니? 한국학교 못 오는 대신에 한국어 공부 더 열심히 해야 해.... 선희 편에 보낸 한국어 공부할 거 받았지? 오늘 뭐 배웠나 잘 읽어 봐. 그리고 숙제 꼭 하고, 일기도 3번 이상 쓰고, 글짓기 숙제도 잘 하고... 다 한 것은 꼭 선희 편에 보내야 해... 평소에 한국어 많이 사용하고, 특히 어른한테는 꼭 존댓말 하는 거 잊지 않았지?”
 
  전화 통화라 천천히 말해야 하건만 선호를 곁에서 지도하지 못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마구 쏟아내듯이 이야기를 했다. 아차 싶어 다시 주지시키려는 순간, 선호가 나에게 한 말!
 
  “니가 엄마한테 말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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