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혐오(嫌惡)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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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혐오(嫌惡)에 대하여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6.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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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혐오’라는 한자의 모습을 살펴보면 글자 자체에 편견이 가득 차 있다. ‘혐(嫌)’은 ‘싫어하다, 의심하다, 불만스럽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이 ‘혐(嫌)’ 자를 가만히 보면 ‘계집녀(女)’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편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한자 중에는 이렇게 편견이 담긴 글자들이 많다. 어찌 보면 편견은 사회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도 있다.

  질투(嫉妬)의 한자를 잘 들여다보면 ‘시기할 질(嫉)’도, ‘시샘할 투(妬)’도 모두 ‘계집녀’가 들어가 있다. ‘요사(妖邪)스럽다’의 ‘요(妖)’에도 계집녀가 보인다. 이 밖에도 많은 부정적인 표현에 여(女) 자가 들어간다. 한자만 그런 것도 아니다. 편견의 역사가 무섭다. 혐오는 편견의 문화이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 혐오만큼 문제가 되는 것이 있을까?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나타낸다. 이 감정은 대체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 괜히 싫고, 괜히 밉다. 무엇이 나빠서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싫은 것이다. 물건이나 동물에 대해서도 혐오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징그러운 동물을 싫어하는 감정도 여기에 해당한다. 바퀴벌레나 쥐, 도마뱀 등을 떠올려 보면 안다.
 
  이런 감정은 본능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이것도 사실은 문화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는 도마뱀을 귀여워한다. 귀뚜라미를 싫어하는 문화도 있고, 카멜레온을 좋아하는 문화도 있다. 나는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은 싫어하는 예는 수없이 많다. 아무튼 혐오는 뚜렷한 사실에 근거한 감정은 아니다.
 
  그런데 이 혐오라는 감정이 사람을 향하면 큰 문제가 된다. 특히 개인적인 혐오가 아니라 집단적인 혐오일 경우에는 다툼의 원인이 된다.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떤 민족이나 나라, 피부색을 단순히 혐오하는 것은 큰 문제다. 어떤 문화나 이념, 종교를 무조건 싫어하고 비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인류의 과제이기도 하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괜히 싫어해서 해코지하려 한다면 그보다 답답한 일이 있을까?
 
  다문화 사회에서 혐오는 큰 문제가 된다. 여러 문화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것은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서로의 문화를 궁금해 하고, 서로의 문화를 좋아하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려 하는 것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노력은 하지 않고 무조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멸시하고 혐오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럴 때 ‘천박하다’는 단어를 쓴다. 사고와 행동이 값어치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괜히 무시하는 나라 중에는 한국 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운 나라도 많다. 또 다른 편견을 줄까봐 국가를 언급하기가 좀 그렇지만,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태국, 뉴질랜드, 콜롬비아,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그리스, 터키, 룩셈부르크, 필리핀,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6개국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나라들이다. 혹시라도 그동안 편견을 가진 나라가 있다면, 고마움조차 잊은 우리의 무례였을 수도 있다.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쉽게 무시하거나 혐오할 수 있는 나라나 민족은 없다.
 
  최근에 혐오가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 간의 일인 경우가 많다. 특히 한일 간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한류가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인기인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과 뿌리 깊은 반목으로 ‘혐한류(嫌韓流)’도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혐한과 관련된 도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안타깝다.
 
  두 나라 간의 좋은 분위기가 망쳐지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혐한이 있는 나라일수록 우리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혐오를 해결하는 데 혐오는 도움이 안 된다. 혐한에는 우리의 정성이 답이다. 또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저지르는 혐오의 양을 줄여야 한다. 혐오는 우리와 세상을 망치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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