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5. 학원에 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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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5. 학원에 가야 해요.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6.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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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나는 다시 진영이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그만큼 진영이를 가르치며 일어났던 이야기는 많기 때문이다. 진영이 학급을 끝으로 나는 교장이 되었기에 진영이가 1년만 늦게 입학을 했어도 아마 그 아이를 가르치는 영광과 감격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교사’로서 진영이를 만난 그 1년의 세월에 더욱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진영이는 반듯했다. 정말 반듯했다. 어른에 대한 예절이 몸에 배어 있었고, 어린아이가 가지는 순진함과 해맑음,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진지함, 수업에 집중하는 반짝이는 두 눈... 진영이를 보면 항상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면 나의 마음은 아기 천사가 들어오는 듯 은빛 포근함으로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 왜 ‘바뻐요’가 아니라 ‘바빠요’인지 알았어요. 전 그게 참 궁금했거든 요. 그런데 오늘 수업에서 확실히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진영이가 어느 때보다 환한 모습으로 힘 있게 말을 한다.
 
  “정말?”
 
  진영이를 안아주는 손에 힘이 가며 내 마음은 기쁨으로 차오른다. ‘모음조화’라는 문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기를 바라며 놀이를 통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는데 진영이가 곧 그 효과를 확인시켜 주었다.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조화를 터득하며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한국어의 특징을 금방 깨우친 것이다.
 
  “선생님, 우리 모두 유관순 언니를 위해 기도했으면 해요...”
 
  역사문화시간에 3.1운동에 대해 가르쳐 주었는데 진영이는 유관순 이야기를 듣고 느낀 게 많았나 보다.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머금은 눈망울로 기도하고 싶다는 진영이를 보며 천사가 내려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
 
  “첫 수업을 마쳤는데 어떤 여학생이, ‘선생님, 노래 재미있게 배웠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그렇게 예의 바른 학생을 보질 못했는데 미국에서 만나다니...”
 
  새로 온 음악 선생님이 감동이 컸는지 환희에 찬 얼굴로 얘기를 한다. 나는 그 학생이 누구인지 음악선생님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짐작했을 거다. 바로 진영이다.
 
   “선생님, 아이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학교를 좋아해요. 방학할 때 그렇게 아쉬워하더니 내일 개학이라고 정말 좋아하네요. 이번 봄학기에는 운동회가 있다며 벌써부터 신이 났어요. 이젠 한국학교가 아이들 생활의 일부분이 된 거죠. 전 그 사실이 너무 행복해요… ”
 
  진영이 어머님 전화다. 이런 말을 들을 때는 가슴이 떨리는 기쁨과 함께 벅찬 감격으로 눈가가 촉촉해진다...
  진영이로 인해 더욱 뿌듯하게 채워진 가을학기, 봄학기 1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에 들어갔는데 진영이 어머님께서 갑자기 몸이 아파 수술을 하기 위해 한국에 있다는 전화를 하셨다. 아마도 새 학기에 미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며 진영이와 준호를 잘 부탁한다고 하시면서. 이제 진영이 담임은 아니지만 열성적인 엄마를 대신해 진영이와 준호를 잘 돌보고 싶었다. 그 아이들이 엄마가 없는 자리를 잘 극복하기를 바라면서...
  당시 나는 교장 선생님의 사임으로 갑작스레 교장이 되었는데, 진영이 어머님은 이 소식을 듣고 멀리 한국에서 축하 전화를 주셨다. 아픈데다 오랜 간 치료를 해야 하기에 아이들 걱정에 눈물 마를 날이 없으련만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주시는 진영어머님의 마음은 교장으로서 준비되지 않은 내게 커다란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내 마음의 지주가 되어주셨던 진영이 어머님이 없는 학교는 허전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달에 3, 4번씩 전화와 e-mail로 용기를 주셨고, 여러 가지 조언 또한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1년 후, 예전의 열성적인 학부모로 다시 학교로 돌아오셨다. 나는 학부모회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시기를 원했지만 완치된 몸이 아니기에 부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진영이와 준호 한국어 교육만큼은 예전과 다름없이 열성을 보여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 진영이가 이번 학기부터는 3교시 마치고 조퇴를 해야 겠어요. 학원에 다녀야 해서요...”
 
  문득 한국에서 e-mail로 요청하시던 일 하나가 생각났다.
 
   “...선생님, 학교 수업 후에 학원과 연결된 영어, 수학 수업을 만들어 주시면 어떨까요? 사실 많은 고학년 학생들은 한국어 수업을 듣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3학년 때부터 보는 Statewide Test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는 형편입니다. 그 시험이 명문 중학교에 가는 기준이 되거든요... 맨해튼에는 학원이 없어서 먼 Flushing까지 가야 하기에 한국학교를 두 시간 듣고 부리나케 학원으로 갑니다. 그것이 너무 피곤해서 결국 한국학교는 나오지 못하게 되지요... 영·수 수업이 한국학교에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Flushing으로 이동하는 한국 학생들을 한국학교로 불러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오래오래' 한국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고학년 학생들을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좋은 제안이었지만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유치반은 정원을 초과해 반을 두 개로 만들 정도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고급반이 되면 반 이상이 한국학교를 그만 다닌다. 어떻게 아이들을 고급반까지 계속 한국학교에 다니게 할 것인가? 이 부분은 내가 교장이 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진영이 어머님 말씀대로 영·수반을 만들면 나의 고민도 해결된다. 당시 지인(知人) 중에 유명한 수학 박사도 있었고, 한국학교를 위해 기쁘게 봉사해 줄 분이었기에 적합한 교사를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했다. 그것은 한국학교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국학교는 ‘한국학교’다운 모습을 지켜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영·수반을 만들면 도중에 그만둔 학생은 물론, 지금껏 한국학교를 다니지 않던 학생들도 많이 올 것이고 고급반 포화상태가 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학교는 단순히 제2언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언어학원이 아니라 ‘한국의 정신’을 가르치는 곳이다. 그 고유하며 숭고한 핵심을 현실적 요구와 바꿀 수는 없었다. 대의(大義)를 위해서 소의(小義)를 희생한다고나 할까? 결국 나는 고급반 학생 유지를 위한 과제는 더 고민하기로 하고, 영·수반은 만들지 않겠다는 아픈 결론을 내렸다.
  결국 진영이는 3교시까지만 한국학교에 다니고, 급히 학원으로 달려가는 고달픈 ‘Korean-American’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진영이 어머님은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셨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학교에 나오는 진영이가 참 고마웠다. 6년이나 다닌 한국학교! 그만 다닐 수도 있건만 유년기부터 고정화된 한국학교의 일상을 계속 채우고 키우며, 진영이의 삶에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해주고 싶은 어머님의 마음을 알기에. 미국에서의 성공이 우선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절실함 속에서 한국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 가를 알기에...
  진영이는 3교시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가방을 챙긴다. 한국역사를 배우고 싶은 간절함과 단소를 배우지 못하는 아쉬움까지 가방에 집어넣고 친구들을 뒤로하는 발걸음엔 힘이 없어 보인다.
 
  “괜찮아 진영아, 이렇게라도 한국학교에 나오는 네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데... 네가 미국에서 더욱 실력 있는 사람이 될 때, 이렇게 고생하며 배운 한국어가 더 빛이 나는 거란다. 피곤하겠지만 공부 열심히 해...”
 
  어깨를 다독거리는 손에 격려를 실어 보내면, 교문을 나서는 진영이의 발걸음에 다시 힘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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