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춘추사관과 식민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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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춘추사관과 식민사관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5.06.1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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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모 발행인
이형모 발행인

가쓰라 태프트 밀약 - 미국의 배신

동북아시아의 ‘역사전쟁’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미국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조미수호조약 1조(조선안보협력) 약속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에게 ‘조선침략 동의’를 해준다.

이후 을사늑약(1905)과 한일합방조약(1910)등으로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의 비준동의 없이 외교조약을 강압 날조한 일본은 
‘조선’을 강제점령하고 35년간 지배했다.

일제강점기에 만든 식민사관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1922년부터 1938년까지 ‘조선사편수회’를 가동하여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사’를 만들었고, 
이 작업에 참여했던 ‘이병도’는 
해방이후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강단사학을 지배하고 
지금까지도 ‘식민사관 조선사’를 국민들에게 가르쳐왔다.

식민사관의 핵심은 무엇인가? 
‘조선의 역사는 6천년이 아니고, 
고구려를 창건한 고주몽 임금부터 2천년 역사’라고 조작한 것이다.

고조선은 ‘신화’일 뿐이고, 
고구려에게 법통을 물려준 ‘북부여 왕조’ 시대에 
지방정권으로 86년간 존속했던 ‘위만조선’이 고조선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 이전 역사를 모두 만주벌판에 파묻겠다는 의도인데, 
어떻게 그 이전 ‘4천년 역사’를 감출 수 있다는 것인가? 
2천년도 못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 침략자 일본의 열등의식과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민족역사의 진실 회복 

광복이후 70년이 지나도록 ‘민족역사의 진실을 되찾지 못한 한국’은
아직도 진정한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남북분단 상태에서 ‘강대국 논리’에 휘둘려 민족통일을 제대로 주장해 보지도 못하고,
한국정부는 70년 동안 주변국가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있다.

‘민족역사의 진실’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우리 한인 개개인의 정체성에 필수적 요소이다.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심장이다.
주도적 삶을 이끌어 주는 원천에너지이다.

‘날조된 가짜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이 되지 못하고 겉돈다.
그 바탕에서는 진정한 ‘통일의지’가 솟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기득권세력들은
통일을 애쓰기 보다는 이대로 살다가 죽겠다고 주저앉아 있다.
간간히 발표하는 ‘통일의지’ 표명은 진실성을 의심하는 탓에 국민들 사이에 신뢰와 공감이 없다.
주변 국가들의 찬성 반대에 좌우되는 눈치 보기 ‘통일의지’는 아무런 실천력이 없다.

광복 70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식민사학을 해부하고 진실을 규명해서 ‘민족역사의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심장을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이다.
자연인 누구를 비판하고 매도하자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과 후손들의 ‘빛나는 미래’를 힘차게 열자는 것이다.

  중국의 춘추사관(春秋史觀)

공자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아침에
"태산이 무너지려는가? 들보가 허물어지려는가? 철인이 시들어 떨어지려는가?"
하고 마당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방으로 들어가 수제자 자공에게 말했다.

"너는 왜 이리 늦게 왔는고? 나는 은나라 사람이다.
내가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데 두 기둥 사이에 앉아서 제물을 받더구나.
세상에 밝은 임금이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니 천하에 그 누가 나를 높여줄까?
나는 곧 죽을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병상에 누운 지 7일 만에 돌아가셨다.
‘예기’ 단궁 편에 전하는 공자의 마지막 모습이다.

주나라 주공이 세운 노나라 곡부 땅에서 태어나 재상까지 지낸 공자는
스스로 은나라 후손임을 밝힌 것이다.
동이족 예법에 따라 장례가 치러지는 자신의 모습을 꿈속에서 미리 보고 말한 것인데,
은나라 후손이란 동이족의 다른 표현이다.

춘추사관은 공자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비록 노나라 사람으로 ‘동이족의 재외동포’이기는 하나,
중국의 대학자로서 황제-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의 법통을 잇고 
유학을 일으킨 종주이다.

춘추사관이란 존화양이(尊華攘夷)를 표방한다.
‘화하족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

화하족이란 황하와 장강 사이에 사는 중국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고,
오랑캐는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 화하족 입장에서 변방 사람들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다.

5천년 전 그 옛날 산동성에 청구국을 세운 ‘치우천왕’은
자타가 공인하는 동이족의 통치자인데, 춘추사관은 치우천왕을 폄하한다.
'황제헌원'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기록은 “탁록 전투에서 전사한 것은 ‘치우비’라는 부장이고,
치우천왕은 150세를 살면서 여러 지역을 지배하고 통치했다”고 전한다.

중국 하남성 탁록에 가면 귀근원 안에 ‘중화3조당’이 있다.
귀근원은 1992년 착공하여 1997년에 완공되었다.

중국의 세분 조상을 모신 것이 중화삼조당인데,
어찌된 일인지 ‘황제, 염제’와 더불어 동이족의 영웅 ‘치우천왕’을 같이 모셨다.
오랑캐라고 폄하하던 치우천왕을 뒤늦게 ‘제일 오래된 조상님’으로 모신 것이다.

  화이동근(華夷同根)과 화근이지(華根夷枝)

어찌 된 일일까?
중국이 ‘존화양이(尊華攘夷)’에서 ‘화이동근(華夷同根)’으로 대이동을 단행한 것이다.
‘화이동근’이란 ‘화하족과 오랑캐들은 뿌리가 하나’라는 주장이다.

‘오랑캐들은 배척해야 할 대상’에서 ‘같은 뿌리’로 바뀌었으니 대단한 변화이다.
그런데 ‘화이동근’이 바로 동북공정의 바탕을 이루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그 속셈은 무엇일까?
화근이지(華根夷枝)이다. ‘화하족은 뿌리이고 오랑캐들은 모두 가지이다.’

그래서 중국 사회과학원 학자들의 당면과제는
화하족의 조상 ‘황제헌원’을 하북성 서쪽에서 동북지방으로 본적을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동북지방과 산동성이 본거지인 동이족의 조상 ‘치우천왕’은
양자강 남쪽으로 멀리 본적지를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단군과 웅녀를 모두 ‘치우의 후손’에서 ‘황제의 후손’으로 ‘족보 바꿔치기’를 끝내면,
단군의 자손인 배달민족은 모두 황제의 자손이 되고 중국민족에 포함되는 큰 사업이 완성된다.

‘화하족(한족)의 뿌리 위에 동이족(배달겨레)이 가지’라고 주장하겠다는 
‘역사개조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역사전쟁에서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분연히 일어나 동북아 3국의 역사전쟁에 당사자로 참여해야 하다.
먼저 ‘민족역사의 진실’을 밝혀 한국인의 역사인식 속에서 식민사관을 청산한 다음,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과 조작을 방치하지 말고,
우리의 상고사를 되찾고 동북아시아 역사를 바로잡아
진실한 역사의 토대 위에 동북아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분투노력해야 할 때이다.

  2015년 6월12일
  재외동포신문 이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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