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4. 작전 실패, 완전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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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2막 - 4. 작전 실패, 완전 실패!
  • 김태진 사무국장
  • 승인 2015.06.08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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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근상” - 김진영, 김준호, 이나영, 마이클 김...
  “일기상” - 김진영, 김준호, 정일호, 류하나...
  “우등상” - 김진영, 김준호, 박현일, 조은하...

▲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매 학기 종업식 때 열심히 공부한 학생을 장려하기 위해 시상식을 한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한 학생에게는 개근상을, 일주일에 3번씩 빠지지 않고 일기를 잘 쓴 학생에게는 일기상을,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에게는 우등상을, 또 발전을 많이 한 학생에게는 발전상을 준다. 그럴 때마다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이 바로 “김진영”과 그의 동생 ‘준호’다. 특히 학교 입학 후 4년 동안 한 학기도 빠짐없이 우등상을 받은 진영이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 아이가 장미반을 거쳐 5번째 단계인 우리 반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나는 아무리 우수해도 상이 한 학생에게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상기하며 개근상은 할 수 없어도 그 외 다른 상은 주지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로 진영이는 학교에서 주는 상을 독식하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보기만 해도 든든한 ‘난초반’ 8명의 아이들을 새로 맞게 되었다. 3학년인 동현, 화영, 지수, 4학년인 세민, 현준이, 학교를 들쑥날쑥 다니는 바람에 고학년이 되어버린 5학년 재은이와 선정이. 그리고 2학년인 진영이. 진영이가 가장 막내다. 젖살이 빠지지 않은 뽀얀 얼굴은 언니오빠들 사이에 있으니 더욱 아가 같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망울, 야무진 입매는 언니오빠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그러나 장미반보다 한층 강도 높게 공부하는 우리 반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우리 반은 힘들기로 악명이 높은 반이다. 일단 숙제가 한결 어려워지고 많다. 그리고 매주 시험을 본다. 다음 주에 배울 단어와 문형, 속담 등 15개 정도의 문제를 프린트 물로 나누어 주고, 예습으로 외워오게 하는 시험이다. 이 시험 점수가 우등상을 좌우할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매년 아이들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내 생각으로는 일주일에 15개를 외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판단되었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매일 한국어 단어를 외우는 일, 그것은 그들에게 쉬운 일상이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굳은 각오’를 해도 실천하기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당장 그들의 일과에서 한국어는 그렇게 절실한 언어가 아님과 동시에 그들은 의식적으로도 왜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못 느끼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한국학교를 다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거기다 일기나 숙제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일이기에 매주 시험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는 일 자체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엔 30, 40점을 맞는 학생도 있고, 60점정도 맞으면 잘하는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주 보는 시험에 익숙해지고, 고득점자도 늘어난다. 한 번 고득점을 받은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지고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부하기에 100점을 맞는 학생도 제법 나왔다. 몇 몇 학생은 등교하는 차 안에서도 열심히 외웠는지 교문을 들어설 때도, 교실에 들어서면서까지 프린트 물을 손에서 놓지 않고 틈틈이 외운다. 주중에 외우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한 단어라도 더 외우려는 그 마음을 보며 항상 흐믓한 보람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진영이는 시작부터 달랐다. 첫 시험부터 100점을 맞은 것이다. 그러더니 나와 함께 한 가을, 봄학기 1년 내내 모두 100점을 받은 것이다. 5년의 교사 경험 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간혹 100점을 맞는 학생은 몇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100점으로 일관된 학생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는 그만큼 진영이가 한국어 공부에 열심히 임했다는 얘기도 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숨은 공로는 어머님의 놀라운 정성임을 나는 안다.

  한국어 교육의 성과는 부모님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한국학교 숙제, 일기를 혼자 척척 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아이들 실력은 부모님이 집에서 한국말을 사용하고 숙제와 일기를 도와주며, 얼마나 열성을 가지고 지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진영이 어머님의 지도는 남달랐다. 일단 진영이가 한국학교에 갔다 오면 학교와 담임이 나누어 주는 알림장을 보고 미국학교 숙제, 활동과 조화를 이루어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미국 학교, 한국학교 그 어느 활동도 소홀함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난초반부터 새로 나타난 평소 시험은 하루에 3, 4개씩 외우게 하고 잠들 때 복습을 하며, 금요일 저녁은 엄마가 직접 시험 문제를 내서 시험을 보게 하고, 틀린 문제는 다시 복습을 시킨다고 한다. 그러니 어찌 100점을 맞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진영이는 ‘평소 시험’ 평균 100, 중간고사 98, 기말고사 97 이라는 전무후무의 기록으로 시험점수에서 2등과 40점 이상을 벌리며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우등상은 시험 점수만으로 주지는 않는다. 수업태도, 준비물, 발표, 숙제, 일기도 점수화한다. 그러나 진영이는 숙제, 일기 100%, 수업태도 또한 한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는 신기할 정도의 집중력, 적극적인 발표력... 깍고 싶어도 도저히 깍을 점수가 없을 정도였다. 결국 나는 스스로 결심한 ‘진영이 우등상 안주기 작전’에 실패하고, 진영이는 5년 연속 우등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기록을 거듭 갱신하게 되었다.

  진영이는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학교에 입학 한 이래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학교에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만큼 진영이와 진영이 어머님에겐 미국 생활에 있어 한국학교는 소중하다 못해 절대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한 번은 폭설로 인해 학교가 휴교를 하는 바람에 예정된 학사일정보다 한 주 늦게 방학을 하게 되었는데, 방학 다음 주 가족 여행을 계획한 진영이 어머님은 온 가족의 항공권을 바꾸면서까지 결석을 하지 않고 한국학교에 나올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리하여 역시 5년 연속 개근상 획득!

  매일의 반복된 일상 속에서도 진영이 일기는 참 특별했다. 그 동심의 순수함에 샤워를 하는 기분이랄까? 매주 첫눈을 맞는 ‘순백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나는 어느 새 일기를 펴 보기도 전에 설렐 정도로 그 아이의 일기에 빠져 들어갔다. 매주 한 번씩 쓰는 글쓰기 또한 수작이다. 내용과 표현이 창의적이며, 글을 읽고 나면 저절로 공책을 꼬옥 안게 되는 포근한 만족... 진영이 눈으로 본 세상, 사람, 사물들... 그 아이의 글을 모아 책을 내면 수정 같이 맑은, 햇살 같이 밝은 동화가 되지 않을 까 싶다. 어쨌든 그런 진영이에게 일기상을 안주는 것은 교사로서의 양심에 관한 일이다. 그래서 우등상, 개근상에 더하여 일기상 또한 추가되었다.

  이렇게 해서 학기 초에 어떻게 해서든 진영이에게 상을 안 주려 했던 나의 결심은 진영이와 어머님의 열성에 탐복하며 아무런 저항 없이 굴복하였고, 진영이는 예년과 같이 3관왕의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게다가 ‘열심히’라고 하기엔 성에 차지 않고, 극성스럽다고 하기엔 너무나 감동적인 진영이 어머님에게도 상을 드리고 싶을 정도로 나는 모녀의 한국학교 사랑에 완전 항복하였다. 결국 나의 ‘진영이 상 안주기 작전’은 실패!, 완전 실패로 돌아갔지만 한국학교를 너무나 사랑하는 진영이 가족을 만난 것은 내 인생의 소중한 선물이자 한국학교에도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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