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효녀 심청의 공양미 3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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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효녀 심청의 공양미 3백석
  • 이병우 총경리
  • 승인 2015.06.0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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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총경리(상양 국신광전 실업 유한공사)
  한국의 6월 가뭄이 심각합니다. 제가 매일 저녁마다 올라가는 약수터에도 급기야 샘물이 고갈되어 나오질 않습니다. 약수터로 향하는 개울과 계곡도 역시 물이 없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바싹 마른 논과 밭은 다소 익숙하지만 “마른 계곡”은 영 익숙하지 않더군요. 하는 수 없이 약수터의 맑은 물을 며칠 째 포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약수 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마트에 가면 각종 생수가 즐비합니다. 그러나 산속 깊은 곳의 약수터에서 막 쏟아지는 시원한 물을 가파른 숨을 진정시키며 한 모금 마시는 느낌은 마트의 생수와는 근본이 다를 겁니다. 그래서인지 물 없는 계곡의 마른 풍경이 정신적으로 제게 더 심한 갈증을 유발시키기도 합니다. 계곡에 물이 없는 겁니다. 답답하고 황량하고 갈급한 겁니다. 느낌이 그런 겁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여러 사회적인 현상과 사건과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뭐라 할까, 물이 더 이상 안 나오는 약수터 같은, 계곡을 따라 형성된 냇물에 물이 없는 듯한 기분을 가져 봅니다. 약수터 시설은 아주 깨끗하고 좋습니다. 산 속 오솔길도 아주 잘 다듬어져 있기에 그 옆을 따라 만들어진 자연의 경치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가물어 비가 오질 않는 겁니다. 메마르고 건조합니다. 약수터도 그렇고 계곡도 그렇고, 어쩌면 우리 사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숨 쉬고 살아가는 사회 곳곳에 샘물 같은 정감이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흘러 넘쳐야 하는 인정이 없는 듯도 합니다. 가뭄만이 세상에 건조함을 주는 것이 아닐 겁니다.

  아침에 보니 성경 외경에 이런 말씀이 있더군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둘 다 곤란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신문기사를 보니 온통 메르스 감염에 대한 것이더군요. 신문뿐만 아니라 각종 매체에서도 연일 난리가 아닙니다.

  저 또한 걱정이 됩니다. 특별한 치료약이 없는 신종 바이러스가 한국에 침투한 겁니다. 그런데 정부의 사태 진정 노력과 전략(?)은 별로 신통치 않아 보입니다. 아주 전적으로 신뢰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의 의료 기술을 자랑하는 한국입니다. 며칠 지나면 별 일 없을 거라고 생각 했지만 그 게 아니더군요.

  지난 10여 년간 중국에 살면서, 제 기억으로는 두 번 정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아주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중국 친구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중국 사람들을 만나기 싫었을 정도로 한국인이라는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던 겁니다. 그 중의 하나가 '세월 호' 사건이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정말로 한심할 만큼 저 자신이 싫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한국인이지? 그래, 우리나라는 한국이야!” 이런 한탄의 힘없는 고백을 혼자서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참사로 죽어간 어린 영혼들을 향한 슬픔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끝내 저 자신과 조국이 그렇게 밉더군요. 아무리 다른 핑계거리를 찾아서 위로를 삼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가 장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단 한 명도 구출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늘도 한국 사회는 메르스 사태로 혼돈과 혼란의 하루가 시작 될 듯합니다. 눈먼 사람이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말씀에는 예수님의 심오한 깊이와 뜻이 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의 상식으로도 그 말씀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눈이 먼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고 눈이 시퍼렇게 빛나는 영특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원하고 선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쳐다보고 또 쳐다봐도 메르스 사태는 이미 우리를 구덩이에 빠트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눈이 멀었던지, 끌고 간 사람들이 눈이 멀었는지는 차후에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선은 간신히 구덩이 입구를 붙잡고 버티고 있는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와 경제는 물이 없어 가물어 메말라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는 자꾸 우리를 구덩이로 몰아갑니다. 정신을 차리고 빨리 나와야 할 겁니다. 더 이상 눈먼 사람의 인도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 사람이 미국의 농부이든 영국의 도선사이든 중국의 어부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만약 그가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의 눈을 떠 주게 해 줄 테니 우리의 산 목숨을 동해 바다에 바칠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즉시 대답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른 죽겠노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효녀 심청이 공양미 3백석을 받고 임당수에 몸을 던져서 끝내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했다는 성공 신화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식 세대들이 더 이상 눈먼 장님의 손에 끌려 다니지 않을 겁니다. 아침에 “내가 너무 일찍 한국으로 돌아 온 것은 아닌가?”하는 답답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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