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나랏님 욕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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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나랏님 욕도 한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4.2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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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이 글의 제목만 보고 혹시 정치적인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면 의도치 않게 꼬인 셈이 되었다. 정치하고는 상관없는 글임을 밝혀둔다.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어른들은 늘 대통령 욕을 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대통령 욕은 술자리 단골 메뉴였다. 독재정권이든, 문민정부든, 국민의 정부든, 참여정부든 간에 별로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가 지날수록 욕이 많아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통령마다 욕먹을 일이 있었기도 했겠지만 안 보는 데서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 구석에 있었던 듯하다. 아마도 대통령 앞이라면 절대로 안 했을 가능성이 높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재미있게 본 서양 영화중에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라는 게 있다. 다른 여자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귀에 들린다는 황당한 소재의 영화였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런 바람들이 이 영화의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남의 마음을 엿듣는 일이 처음에는 즐거운 일이었다.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서 사 주거나 해 주면 그 사람을 쉽게 기쁘게 할 수 있다. 상대의 마음에 드는 일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야말로 환심을 사기에 딱 좋다. 그러나 마음을 읽는다는 것에는 부정적인 생각도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나에 대한 험담도 들려온다. 내 가족에 관한 이야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도 들려온다. 귀를 막고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그 사람의 부정적인 생각이 귀에 들린다. 상사를 욕하기도 하고, 엉큼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청순해 보이는 사람이 음란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사람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섭섭함이나 배신감은 허탈함을 넘는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안 보이는 데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 속담은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의미처럼 이야기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서 ‘용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를 100% 좋아하기는 힘들다. 어떤 경우에는 그게 부모자식 간이어도 100%는 안 된다. 부모도 자식을 욕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식도, 부부간에도, 형제 자매간에도, 아주 친한 친구들 사이에도 욕을 할 수도 있다. 100%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서운해 할 일은 아니다. 99% 좋아하는 사이에서도 1%는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사람 사이다.
 
  우리는 우연찮게 누군가가 내 험담을 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나에 대한 험담을 몰래 전해 주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믿었던 사람에 대한 서운함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복수심에 불타기도 한다. 어떻게 나를 욕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용서가 안 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게 한다. 내가 뒤에서 누구의 험담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점이 싫은 것은 아니다. 또 어떨 때는 그저 다른 사람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맞장구를 친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멀어지는 장면을 보면 이런 작은 오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나를 존경한다고 하던 사람이 뒤에서 나를 흉본 것을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화를 내게 되고, 안 보게 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내 욕을 한 이가 자기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도 용서가 안 된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를 좋게 보지 않는 마음이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용서해야 한다. 안 보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한다지 않는가? 우리가 나랏님 정도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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