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잔인한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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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잔인한 4월
  • 이병우 총경리
  • 승인 2015.04.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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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총경리(상양 국신광전 실업 유한공사)
  해마다 4월이 되면 영국의 시인인 토머스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詩)가 생각나곤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시작 될 겁니다.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었다 /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눈을 가졌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안 할지도 모릅니다. 세상 밖으로 갓 나온 대학 졸업자들이 냉정한 사회의 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랄까. 알면 고민이 생기고 걱정 근심이 생깁니다. 남자들이 가야 하는 군대와 우리네 결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모르니까 덤비는 겁니다. 그러나 막상 그 삶의 현장에 나가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대체로 모든 계절의 본격적인 순환이 4월부터 제대로 가동이 됩니다. 그래서 인간과 나무와 숲과 동물들은 긴 겨울잠에서 누렸던 안온한 기분을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비록 시인의 말처럼 잔인하다고는 말 할 수 없어도 따듯한 잠 보다는 아직은 싸늘한 새벽에 일어나는 기분이 그리 행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 어느 도시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 입니다. 30대의 한 남자가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립니다. 혹시 그 불똥이 자기에게 튀길까봐 까치발을 하고 들어간 남편은 조용히 숨소리를 죽이고 아내의 화가 난 경위를 들어봅니다. 다름 아니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애가 하교 길에 자동차와 부딪쳐서 다리에 경미한 찰과상을 입은 겁니다. 아내는 당연히 시퍼렇게 멍이 들고 군데군데 상처가 난 딸애의 다리를 보고 화가 치민 겁니다.

  다친 부위에 약을 발라주면서 딸애를 나무랍니다. 왜 조심하지 않았느냐? 사고를 당했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야지, 왜 전화번호도 받질 않았느냐? 나중에 병원에 가서 검사했을 때 뼈에 금이라도 갔다고 하면 어쩔 거냐? 딸애는 자기대로 대답을 합니다. 사실은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 사고 낸 아저씨가 전화번호를 주면서 더 아프거나 병원에 가게 되면 꼭 전화하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엄마는 그 전화번호를 어떻게 믿느냐? 당신 같으면 믿겠느냐? 결국은 화살이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남편에게 날아옵니다. 남편도 화가 잔득 난 부인에게 틀림없이 진짜 전화가 아닐 거라고 바로 맞장구를 칩니다. 그러나 어쨌든 한 번 전화는 해 보자는 심산으로 딸애가 내민 종이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 봅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아주 희한한 일이 터집니다. 상대방 전화벨 소리가 남편의 안주머니에서 나는 겁니다. 아내와 남편은 갑작스런 현상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이 게 무슨 일이람!!

  사연은 이런 겁니다. 그 날 남편은 퇴근하면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휴대폰 하나를 줍게 됩니다. 비교적 상태도 좋고 깨끗한 핸드폰입니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이라 생각하고 일단은 주머니에 집어넣고 가는데 바로 전화가 옵니다. 받아보니 역시 전화 주인입니다. 이 상황에서 전화기를 주운 남자는 상대방에게 그냥 돌려줄 수는 없다고 말 합니다. 돌려주는 값을 달라는 의미입니다. 상대는 전화기 보다는 그 안에 저장된 전화번호 때문이라고 하면서, 하는 수 없이 얼마를 주면 되겠냐고 물어보고, 남자는 300위안을 요구하는데 전화주인은 한 숨을 쉬며 100위안을 준다고 하니 이쪽에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전화주인은 몇 번 간청을 해도 안 되니까 체념을 하고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전화기에서 다시 전화벨이 울리는 겁니다. 남자가 전화를 받습니다. 상대방이 할 수 없이 300위안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은 돈을 300위안씩 주면서 돌려받을 생각은 없지만, 사실 오늘 낮에 자기가 초등학생 한 명을 차에 부딪쳐서 다치게 했는데 비교적 가벼운 사고인데다가 워낙 자기가 급한 용무가 있어서 전화번호만 주고 급히 갔다. 그런데 혹시 그 학생한테 전화가 올지 몰라서 전화를 꼭 찾아야 한다. 전화를 안 받으면 내가 나쁜 놈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내용입니다.

  아시겠지만 그 다친 딸애의 아버지가 휴대폰을 줍고 주인에게 돈을 달라고 했던 겁니다. 자초지종을 이실직고한 남편은 아내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주인을 만나 돈은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고 전화기를 돌려줍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가끔 우리에게 묘한 인연과 사고와 진실을 가져다줍니다. 사람이 결국은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겁니다. 타이타닉호가, 세월호가 그렇게 허망하게 사고가 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고모라 성이 불지옥으로 변하기 전 날까지 인간은 마시고 떠들고 흥청댄 겁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경남기업의 성완종 회장이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하면서 그가 남긴 메모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 내용이 작금의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돈을 먹었다는 사람은 안 먹었다고 결사 부인하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말이 없습니다. 휴대폰을 주운 남자가 불과 서너 시간의 앞을 모르고 전화를 잃어버린 주인에게 돈을 달라고 한 이야기가 그래서 오늘 생각이 난 겁니다. 별로 특별한 재미나 감동도 없는 이야기지만 인간이 안고 있는 속물적인 근성과 탐욕은 대개 그 결과가 별로 좋지 않게 끝이 납니다. 기업의 부실과 문제를 정치권에 돈을 주고 해결 하려고 한 사람이나, 알토란 같은 남의 돈을 꿀꺽 잡수시고 오리발을 내미는 사람이나 아마도 그 결과는 이번에도 별로 좋아 보이질 않네요. 그래서인지 당사자들한테 올 4월은 그야말로 “잔인한 4월”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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